높이 2.62m의 원각상(圓刻像)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의 입불상이다. 같은 돌로 조성된 주형광배와 불신(佛身)은 윗면에 두 발을 새겨 놓은 대좌에 끼워 두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광배는 상부가 파손되었으며, 대좌는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다. 1972년 경남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보물로 승격되면서 거창농산리석불입상(居昌農山里石佛立像)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신체에 비하여 목이 굵고 머리가 크게 조성되어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양 볼이 부풀어 올라 풍만한 얼굴은 부분적으로 마멸되었으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서려 있다. 양 어깨와 가슴은 장대하며, 법의는 얇아 신체의 굴곡이 잘 드러나 있다. 상체에서 여러 겹의 U자형의 주름을 이루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져 다리 부분까지 대칭적인 옷주름을 이루는 우전왕(優塡王, Udyana王) 형식의 통견을 입고 있다. 중앙의 밑단의 옷자락은 V자형으로 늘어지고 양 팔목에 걸쳐 내린 옷자락은 몸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다.
우전왕 형식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후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님이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불상을 최초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최초의 불상을 우전왕식이라고 한다.
우전왕식 법의는 720년에 조성된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8세기 전반기 경으로 추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사암제석불입상과 굴불사지석불상 남면 불입상 등에서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감산사 석조 아미타불입상과 국립경주박물관 사암제 석불입상의 밑단은 W자형을 이루고 있어 V자형을 이루고 있는 이 불상과 차이를 보인다. 양 무릎에서 Y자형을 이루며, 밑단이 V자형을 이루는 것은 굴불사지석불상 남면 불입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곧게 펴 내린 특이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은 하늘을 향하고 왼손은 땅을 향하는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맺고 있는 수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왼쪽 윗부분이 떨어져나간 주형(舟形)의 광배는 조각이 선명하지 않으나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가 돌려져 있다.
대좌는 자연암반을 이용하였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윗면을 둥글게 다듬어 양발을 양각하였다. 전신에 양감이 뚜렷하고, 당당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와 형식화되지 않은 법의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조각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와 손 등의 부분적인 파손은 있으나 비교적 규모가 크고 환조에 가깝게 조성되어 있으며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상으로 주목된다. 더불어 또한 법의가 신체에 붙어 드러난 볼륨 있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양 다리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사실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