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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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비각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비각
서예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고려후기 손시양의 효행에 관해 기록한 정려비. 기록유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慶州 皇南洞 孝子 孫時揚 旌閭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황남동 240-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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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고려후기 손시양의 효행에 관해 기록한 정려비. 기록유산.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182년(명종 12) 건립. 높이 1.97m, 너비 44.6㎝. 고려시대 사람 손시양(孫時揚)의 효행을 표창하는 정문(旌門)의 설치 내력을 기록한 비이다.

이 비는 방주형(方柱形)의 석재로 대석과 개석이 없다. 앞면에는 자경(字徑) 30㎝의 해서(楷書)로 ‘孝子里(효자리)’ 3자가 깊게 새겨져 있으며, 뒷면도 해서로 자경(字經) 4.5㎝, 5행 130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간 여묘(廬墓)한 손시양의 효행을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蔡靖)이 왕에게 올려 마을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비문은 채정이 지었다.

이 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방주형으로 석표(石標) 형식을 띤 점이 특색이며, 고려시대 불교관계 이외의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금석전문』중세 하(허흥식 편, 아세아문화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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