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서첩은 순흥안씨 사재(思齋) 안처순(安處順)이 1518년 홍문관 박사로 재직할 때 남원에 계신 모친을 위해 가까운 곳의 지방관을 자청, 구례 현감에 부임하게 되자, 유용근(柳庸謹),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동료·친우들이 송별의 뜻에서 서(序)·시(詩) 등을 지어준 것이다.
아들 안전(安瑑)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모두 24명의 필적이 48면에 실려있다. 이 수필첩에는 김인후(金麟厚)가 1549년 7월에 쓴 발문과 호남 안찰사 한준겸(韓浚謙)이 1603년에 쓴 발문이 있다. 그 가운데 한준겸의 발문에 따르면, 1601년 남원을 지나다가 이 서첩을 보고 이를 서울로 가지고 가 친우들에게 보였는데, 대제학 이호민(李好閔)은 궁중 장인을 시켜 깨끗이 표장(表粧)하게 하고 명필 한호(韓濩)에게 표제(表題)를 부탁했다고 한다.
뒤쪽에는 조인영(趙寅永)이 1829년에 전라감영에서 다시 표장하고 일부를 판각하여 원본을 후손에게 돌려주었다는 1830년의 발문이 있으며, 맨 끝에는 송병선(宋秉璿)의 발문이 붙어있다.
이 수필첩은 안처순이 기묘명현에게서 받은 서간을 모은 「기묘제현수첩」과 함께 16세기 정치사 및 서예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