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는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螭首)를 모두 갖춘 완형의 탑비이다. 귀부는 화강암제로, 여의주를 문 머리 조각이 뛰어나고 등에 6각의 귀갑문이 새겨져 있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는 옆면을 안상(眼象)으로 새기고 윗면을 복련(覆蓮)으로 돌린 비신 받침[碑座]이 가로로 돌출되어 있다.
이수 또한 화강암제로, 아랫면에 2단의 낮은 받침과 앙련(仰蓮)을 돌려 새기고 4면에는 구름 속의 용틀임을 뛰어난 수법으로 새겼으며, 정상부에는 보주(寶珠)를 얹었다.
화강암제 비신은 앞면이 거의 마멸되어 위쪽 일부만 판독될 뿐이나 뒷면은 거의 판독된다. 용두화(龍頭化)된 귀부의 머리와 비신 받침, 이수 등의 조각이 신라 하대로부터 고려 초에 걸쳐 세워진 탑비의 일반적 양식을 따랐다.
비의 건립연대는 958년(광종 9) 8월로부터 960년(광종 11) 3월 사이로 추정된다. 비신 앞면의 마멸로 인해 지은 사람은 김정언(金廷彦)으로 추정되고 쓴 사람은 알 수 없다. 글씨는 해서로 신라 하대부터 고려 전기에 유행되던 구양순류의 서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