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선산(善山)으로 자는 흥지(興之) 또는 대이(待而), 호는 송계(松溪)이다. 1654년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써 전문학관(篆文學官)에 등용되었으며, 관직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여이징(呂爾徵)에게 전서(篆書)를 익혔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전결(篆訣)을 얻어 이를 꾸준히 연구하였다.
마침내 38체(體)에 통달하여 전서(篆書)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가 쓴 것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전해심경(篆海心鏡)』이 간행되었는데, 송시열(宋時烈)·이서하(李瑞夏)·김만기(金萬基)·여성제(呂聖齊)의 서발(序跋)이 있다.
『대학장구』는 『대학』을 38체로 쓴 것으로, 대소전(大小篆)을 비롯하여 고문기자(古文奇字) 구룡운로체(龜龍雲露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글자의 수는 많지 않다. 또한, 당시의 전운서(篆韻書)들이 소략하고 법에 어긋난다고 보고, 그는 옥저전(玉筯篆)을 중심으로 『전해심경』이라는 운서를 지었다(5권 2책).
그는 각 글자의 변법(變法)도 연구하여 『전해심경』에는 기문이법(奇文異法)까지 수록되어 있다. 당시로서는 전서대전(篆書大全)이라고 여길 만큼 내용이 풍부하며, 또한 김진흥 자신이 필생의 작업으로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서예사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