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건물. 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24년 7월 17일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고운사는 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신라 말엽 최치원(崔致遠)이 입산하여 여지(如智) · 여사(如事) 두 대사(大師)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였다.
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등운산(騰雲山) 아래 세 마리 거북 형상의 산봉우리에 기대어 북에 대웅전, 서에 극락전, 동에는 탑을 세웠다고 한다.
흘러내리는 계류 위에 걸쳐 앉은 가운루는 누(樓)형식의 건물로 조계문과 천왕문을 들어서면 서향한 정면이 바로 보인다. 이 건물은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리라 여겨지는데, 1676년(숙종 2)과 1717년의 중수기가 남아 있다.
건물의 전면과 양 측면은 판벽으로 구성되었고, 전면 중앙 3칸에는 가운데 설주가 있는 쌍여닫이 판창문이, 남측면에는 판문으로 된 출입문을 두었다. 북측면의 동쪽 칸에 치우쳐서 누각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무로 짜여 있고 양여닫이 판문을 달아 누에 들게 하였다.
동향인 배면은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려 개방하였다. 계곡 바닥 암반에는 둥글고 긴 초석을, 지면에는 막돌 덤벙주초를 두어 누하주를 세우고 우물마루를 깔아 누상주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으로 하였고, 주두(柱頭)의 바깥쪽은 초익공으로, 안쪽으로는 초각된 보아지로 들보를 받쳤다. 그러나 건물 네 귀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는 2익공으로 짜여져 있다.
지붕가구는 5량가로 들보 위에 두꺼운 판재를 포개놓아 중도리와 종보를 받았으며, 종보 위에는 고졸한 모양의 화반과 첨차를 직교하여 마루도리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시대, 특히 중기의 양식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의 세부형식이 각기 다른 시대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짐작케 하고 있다. 그러나 초익공계 건물에 귀기둥만 2익공으로 꾸민 점이나, 산지 가람에서 계류 위에 꾸민 누형식 등은 흔치 않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