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정사는 의성김씨 구미리 입향조인 오우당(五友堂)김근(金近)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6대손 굉(硡)이 주도하여 1791년 지은 것이다. 2년 뒤인 1793년에는 영모사(永慕祠)를 세우고 편액을 구암정사라 하였다.
구미리생담(笙潭)의 풍광 좋은 산록에 북서향으로 자리잡은 정사는 앞에 있는 사주문(四柱門)을 들어서면 네모나게 둘러친 담장 안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정사가 자리잡아 학(學)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정사 뒤에 있는 삼문을 들어서면 다소 작은 방곽(方廓) 안에 정면 3칸, 측면 2칸인 영모사가 있어 묘역(墓域)을 이루고 있다.
정사의 평면은 가운데에 있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ㆍ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중당을 강수재(講修齋), 동쪽 방을 양정재(養正齋), 서쪽 방을 치각재(致慤齋)라 이름 붙였다.
대청 전면에는 칸마다 사분합들어열개문을, 후면에는 가운데 설주를 세운 영쌍창(欞雙窓)을 달았고,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양측 모두 앞칸에는 머름 위에 양개세살창을, 뒷칸에는 키가 큰 외짝 세살문을 내었다. 문틀은 정면의 분합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연귀 수법을 썼다.
대청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주두 위에 무익공의 소로를 수장한 굴도리집인데 가구는 견실한 5량가구로 종보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영모사는 통칸집으로 전면과 배면 기둥을 모두 두리기둥으로 세웠고, 무익공에 소로수장한 5량가구 집이다. 서원의 신축이 억제되었던 시기에 지어진 건물로 궁극적으로는 서원으로 승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춘 채 정사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