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201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때 창건한 절로, 고려 고종 18년(1231)에 몽고족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을 충렬왕 때 왕자인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재건하였다.
1606년(선조 39)사명대사가 중수하여 승군(僧軍)이 주둔하였으며 소속 암자가 10여개 소나 되었다. 복우산(伏牛山)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경내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 응진전과 요사 2동이 있다.
대웅전은 높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막돌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주춧돌) 위에 글겅이질한 두리기둥을 세웠다.
내외 4출목으로 짜여진 공포(栱包)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드물게 보이는 형식인데, 특히 귀포에서 기둥 안쪽으로 평방 위에 주두(柱頭)를 놓아 첨차를 짜올리고 귀포의 행공첨차를 늘려 결구한 것은 흔치 않은 수법이다.
외부 공포는 초가지로 된 앙서[仰舌]로 윗몸에는 연꽃봉오리와 용머리 등을 초각하여 장식하였다. 내부 공포의 살미첨차는 완곡하게 다듬어 꽃새김하였고 다소 빛이 바랜 듯한 현란하지 않은 단청의 색조는 더한층 장중함을 자아낸다.
상부는 5량가구이나 우물천장인 소란반자로 가려졌고, 고주를 이용한 후불벽과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한 수미단(須彌壇) 위 보궁에는 亞자형 평면의 지붕을 가진 7출목의 겹처마 닫집[唐家]으로 장엄하였다.
정면 창호는 어간에 3분합 빗꽃살을 드리우고, 둔테(기둥이 돌도록 구멍을 뚫어 대는 나무)에 문장부(門將夫: 화살촉 모양으로 돌기시킨 것)를 꽂아 여닫도록 하였으며 좌우 협간은 띠살문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