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운곡리 백제 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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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의 세발토기 · 세경호 등이 출토된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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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의 세발토기 · 세경호 등이 출토된 가마터.
내용

1983년 8월 전주시립박물관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다. 운곡마을 뒷산에서 남으로 향한 산능선의 동쪽 비탈 중턱에 있다. 이 산줄기 끝의 남사면에도 2, 3개소의 도요지가 있었으나 도로 개설로 잘려나갔는데, 파편으로 보아 같은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된 도요지는 아궁이쪽이 파괴되었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요지의 구조는 위쪽은 약 1m, 아래쪽은 약 20㎝ 정도의 지면 아래에 묻혀 있었으며, 아랫변이 넓고 윗변이 좁은 둥근사다리꼴의 바닥평면을 이루고 있다.

가마터의 바닥은 길이 6.0m, 너비는 아랫변이 4.5m, 윗변이 2.0m에 이른다. 아랫변 동북쪽에는 아궁이터[焚口]가 있고, 그 반대편 대각선상 윗변 끝에 굴뚝고래[煙炕]가 있다.

바닥은 약 20∼30㎝ 두께의 검은 숯층[炭灰層]이 있고, 이 숯층에 도기조각과 숯덩이가 퇴적되어 있다. 그 위층은 가마터 천장이 내려앉은 20㎝ 내외의 불에 탄 진흙층이 덮여 있다. 가마터 바닥은 약 10°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남변에서 북변으로 약 6°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궁이에서 시작되는 불고래[炕洞]는 바닥둘레를 감돌아 굴뚝고래에 연결되는데, 불고래는 깊이 35㎝, 너비 30㎝ 내외이며, 굴뚝고래는 타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원추형 또는 각추형의 다리를 가진 세발토기, 꽃봉오리형 · 접시형의 손잡이가 달린 뚜껑, 두드림무늬가 찍힌 단지, 짧은 직구(直口)의 단지, 세경호(細頸壺) · 시루밑조각 등으로 다양한데, 단지바닥은 거의 평평하다.

이 유적은 구조가 밝혀진 대표적인 삼국시대의 요지 중 하나로서,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조각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 표정리 등에서 출토된 중앙 연도가 달린 횡혈식 석실에 부장된 토기와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제작 연대는 6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전북고창운곡리익산신룡리요지(全北高敞雲谷里益山新龍里窯址)」(전영래, 『백제시대의 요지연구』, 문화재관리국, 1988)
「고창운곡리백제요지발굴조사약보(高敞雲谷里百濟窯址發掘調査略報)」(전영래, 『전라북도유적조사보고』14, 1983)
집필자
전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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