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운곡리 고인돌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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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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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내용

인접한 용계리에 걸쳐 20여 기가 분포되어 있는데, 아산댐 건설에 따라 1983년 3∼4월에 전주시립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지역은 운곡리 마을 앞을 A지구, 그 동쪽을 C지구, 가장 안쪽을 B지구로 구분하였다. 안쪽으로 갈수록 뚜껑돌의 크기가 대형화된다. 가장 큰 것은 B-1호로서 길이 5.0m, 너비 4.5m, 높이 4.0m의 안산암계(安山岩系) 자연석(비중 3.0 내외)을 3개의 굄돌로 받친 것으로 그 무게만도 150t 이상이 된다. 이 밖에도 100t 이상 1기(B-8호), 70t 이상 2기(B-5·6호), 50t 이상 7기, 30t 이상 3기 등이 있다.

용계리 · 운곡리에서 조사된 고인돌의 지하구조는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제1형은 뚜껑돌을 3∼7개의 굄돌로 괴고, 지하에 돌널을 만든 다음 주변에 잔돌을 깔았다.

돌널은 동서쪽의 짧은 벽을 1매의 판석을 세우거나 잡석으로 쌓았고, 양쪽 긴 벽 역시 판석 또는 잡석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3∼4매의 판석을 뚜껑돌로 덮었다. 돌널의 크기는 길이 1.2∼1.6m, 너비 0.44∼0.5m, 깊이 0.3∼0.4m 내외이다.

C-2호의 예를 보면 길이 2.1m, 너비 2.06m, 두께 0.9m의 부채꼴 평면의 뚜껑돌을 4개의 굄돌로 괴었다. 뚜껑돌과 돌널의 방향은 북동 60°이다. 돌널의 4벽은 잡석으로 쌓았고, 윗면과 둘레에는 판석을 깔았고, 그 위에 4매의 개석을 덮었다. 돌널의 규모는 길이 1.5m, 너비 0.5m, 깊이 0.5m이다. 개석상면에는 길이 40㎝, 너비 20㎝, 높이 15㎝ 정도의 작은 돌덧널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제2형은 대형 뚜껑돌을 몇 개의 굄돌로 괴고, 그 중앙에 자연판석을 세워 돌널을 짠 것인데 덮개돌은 없다. B-3호의 돌널은 길이 1.1m, 너비 0.6m, 깊이 0.3m의 소규모이다(B-3·4호, C-1호).

제3형은 뚜껑돌을 괸 점은 위와 같으나 지하구조는 없고, 몇 개의 편평한 돌을 깔았을 뿐이다(A-4·6·7호). 제4형은 괴석이나 자연판석을 세워 장방형의 돌널을 만들고, 그 위에 직접 뚜껑돌을 얹었다. 돌널의 벽이 바로 굄돌이 되는 셈이다.

껴묻거리는 없으나, 운곡리 민무늬토기 산포지에서 덧띠겹아가리(粘土帶二重口緣) 토기편 등이 발견되고 있어, 이들 고인돌의 지하구조의 특징과 함께 고려해볼 때, 그 축조연대는 서기전 3세기 말에서 2세기경에 걸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지석묘연구』(김재원·윤무병, 국립박물관, 1967)
「고창지방의 북방식지석묘 3례」(전영래, 『전북유적조사보고』 14, 1983)
「고창 아산지구 지석묘 발굴조사 약보」(전영래, 『전북유적조사보고』 14, 1983)
『고창·아산지구 지석묘 발굴 보고서』(전영래, 전주시립박물관, 1984)
집필자
전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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