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성 ()

거제 고현성 성벽
거제 고현성 성벽
건축
유적
문화재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이칭
이칭
거제성
유적
건립 시기
조선시대
관련 국가
조선, 일본
관련 인물
정분
높이
13척(약 4m)
둘레
1,430m
면적
23,679㎡
소재지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79년05월02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내용 요약

고현성(古縣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1664년 거제 관아를 거제면으로 이건하고 고현성(古縣城)이라 칭하였다. 둘레 1,430m, 높이 약 4m로 이루어졌으며, 평면 주형인 석축성으로 삼문에 옹성과 치성, 해자를 구비했다. 조선 문종 1년 11월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단종 1년에 필축하였다. 1991년, 2004년 고현성 동문지와 해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시청 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건립 경위

고현성은 문종 1년(1451) 가을인 11월에 경상도 거제현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단종 1년(1453) 8월 겸지병조사 김순을 경상도에 보내 축성을 감독하고 필축하였다. 고현성을 쌓는 데 경상도민 2만 명이 참여하였으며, 영천군사 정차태, 진주판관 양연, 곤양군사 최성노, 청도군사 이의, 사천현감 장우, 진해현감 김한진이 감독하였다. 거제현감 이효성은 관아주1를 세우는 등 3000척의 성벽과 40여 간의 건물을 9년 동안에 걸쳐 완공하였다.

형태와 특징

고현성은 계룡산 남쪽 산록완사면에 동에서 서로 배치된 평면 주형의 평산성이다. 한국전쟁 당시 UN군 포로수용소가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이때 성이 훼손되었다.

1991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북벽과 서벽 일부, 2004년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동문지와 동벽 해자의 일부를 조사하였다. 북벽과 서벽 및 동벽 일부는 복원하여 정비되었다. 성의 내부에 거제시청이 서벽의 내벽 방향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있다.

성벽은 주2를 제거하고 성 안쪽에서 외벽 쪽으로 ‘ㄴ’자로 땅을 고른 후, 그 위에 10cm 내외의 점토를 다져 주4과 자갈로 체성(体城)의 기단부를 구축하였다. 그 위에 두께 20cm 내외의 주5 주7주6으로 설치하고, 60~130 × 30~70cm 정도의 자연 대석을 약 15cm 정도 물려서 세워 놓았다.

문지는 동, 서, 남문이 있다. 사방의 체성을 모두 잘라 바깥쪽에 반원 모양의 주8을 둘러 만들었다. 고현성 동문지의 옹성 둘레는 47m이고, 성벽의 너비는 7m, 동문지의 너비는 3.2m이다. 북문지의 너비는 4.15m로 확인되었다. 두 문지는 체성과 동시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자는 동벽 체성의 바깥에서 확인되었다. 해자의 규모는 길이 54m, 상부 너비 6.4m, 하부 너비 4.5m, 최대 깊이 2.9m이다. 현재 남아있는 동벽 해자의 길이는 약 185m이다. 해자는 동문지의 옹성을 따라 S자 형태의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 석축교가 확인된다. 방어를 위한 목익(木杙)이 설치되어 있다.

고현성 터에서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기와류와 자기류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기와루와 자기류는 분청사기, 회청사기, 백자 등 생활 자기류인 접시와 사발이 대부분이다. 기와는 집선계 직선형 사선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집선계 사선문, 복합문, 수직선조문, 호상문이 새겨진 것들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해자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호상문이 새겨진 주9 암막새에는 “도광”과 “동치 15年”이라는 명문이 확인된다. 이는 건물의 주10과 관련된 기록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연호는 청나라 말기에 사용된 것으로 고현성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이외 목기가 두 점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거제도는 일찍부터 남해를 거쳐 서쪽으로 진출하는 해로상의 중요한 길목으로 인식되었다. 남해안 지역 중 특히 도서 지역에서 왜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읍성이 축조된 것이다. 따라서 고현성은 조선 전기 연해 읍성의 구조와 축조 수법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성곽 축조 수법의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주석
주1

예전에, 곳간으로 쓰려고 지은 집. 우리말샘

주2

유적(遺跡)에 퇴적한 토층(土層)의 가장 윗부분. 우리말샘

주4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5

내각(內角)이 모두 직각인 사각형. 주로 정사각형이 아닌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6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7

바닥을 받치고 있는 돌. 우리말샘

주8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 우리말샘

주9

글로 명백히 기록된 문구. 또는 그런 조문(條文). 우리말샘

주10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일갑(시공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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