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성지 ()

통영 당포성지 성벽
통영 당포성지 성벽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소재하는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유적
건립 시기
조선시대 1491년(성종 21)
관련 국가
조선|일본
관련 인물
이순신
높이
270cm(잔존 높이)
길이
450cm
둘레
992m
면적
20,836㎡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83년 8월 6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산앙읍
내용 요약

당포성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소재하는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營鎭堡城)이다.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잔존 체성 축조 수법 및 부대시설 등을 볼 때 조선 시대 성종 당시 축조한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중 하나이다. 잔존 성의 둘레는 800m, 동문과 서문 좌우에 각각 1개의 치성이 있고 남벽에 4개 치성을 두어 모두 8개 치성이 있다. 잔존 석축은 최고 높이 270cm, 너비 450cm이다. 삼덕리 대청 마을과 인접한 해안에 당포성 해안 방어를 위한 수중 목책이 확인되었다.

정의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소재하는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발굴 경위 및 결과

1998년 6월 삼덕항 공사 현장에서 다수의 목주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를 하였다. 목주는 수중 주9의 일부로 추정되었다. 수습된 목주는 모두 44개로 길이가 가장 긴 것이 318cm 가량으로 가장 짧은 것이 102cm 정도로 평균 150cm 내외며 목주 굵기는 10cm~16cm 가량으로 평균 13cm 정도이다.

건립 경위

당포성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위치한다. 전체 면적 14,967㎡로 원래 이 성은 고려 공민왕 때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수많은 병사와 주민들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전한다. 기록에서 당포라고 확인되는 것은 조선 1438년(세종 20) 4월 기록에 "......번포를 당포로 개칭한다."라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당포성이 점령당했으나, 6월 2일 이순신이 다시 탈환하였는데 이것이 당포대첩이다.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성종실록』 16년 성기 심정 내용을 보면, “좌지 동남향이고 둘레 1,400척이며,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지형에 수천이 없었다.”라고 하고 있다. 성내에 수천(水川)이 없는 불리한 조건 때문에 재론(再論) 과정에서 이론(異論)이 나타난 바 있었으나, 애초의 심정에 따르기로 하였고, 성종 21년 8월에 완공한 것은 둘레 1,445척(약 676m), 높이 13척(약 4m)으로 대략 심정 때의 그것과 일치하였다. 1934년에 간행된 『통영군지』에도 "산양면에 있으니 당포진의 옛터다. 둘레가 1,445척이고 높이가 13척인데 주5를 두어 지켰던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형태와 특징

당포성 체성은 평평한 자연 주1을 일렬로 배열하여 주2으로 삼고, 20cm 정도 안으로 들여서 역시 자연 할석으로 외벽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면서 내벽은 외벽보다 작은 돌과 주3을 쌓은 후 흙을 다져 밋밋하게 쌓아 올린 내탁수법으로 축조되었다. 삼덕리 야산 봉우리와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남향으로 쌓은 주4 성이다. 남쪽 해안에 정문을 두고 산 쪽으로 동문과 서문을 두었으며 문에는 주6을 설치하였다. 동문과 서문 좌우에 각각 1개의 주7이 있고 남벽에 4개 치성을 두어 모두 8개 치성이 있다. 잔존 주8은 최고 높이 270cm, 너비 450cm이다. 남쪽 일부 석축이 무너진 것을 제외하고 동서북쪽 망루터는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남문 쪽에 있는 옹성이 비교적 그 형태도 잘 보존되어 있다. 당포성과 관련하여 삼덕리 대청 마을과 인접한 해안에 수중 목책이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당포성은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수군 영진보성 중 수중 목책을 구비한 중요한 성곽으로 과거 지표 조사 실시 후 체성이 일부 복원되었으나 당포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당포성에 대한 정밀 조사 등이 이루어져 당포성의 실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당포성지표조사보고서』(통영시, 1997)
『통영 삼덕항 내 당포수중유적』(마산지방해양수산청, 경남문화재연구원, 2001)
이일갑, 『조선의 영진보성』(국학자료원, 2022)
주석
주1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2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우리말샘

주3

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우리말샘

주4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는 방식. 우리말샘

주5

조선 시대에, 각 도에 있는 수군의 수영에 속한 종사품 외직 무관(外職武官) 벼슬. 수군우후의 아래이다. 우리말샘

주6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주8

돌로 쌓아 만드는 일. 우리말샘

주9

말뚝 따위를 죽 잇따라 박아 만든 울타리. 또는 잇따라 박은 말뚝.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일갑(시공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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