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언양읍성 ( )

울주 언양읍성 성벽
울주 언양읍성 성벽
건축
유적
문화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 사적.
이칭
이칭
언양군성
약칭
언양읍성(彦陽邑城)
유적
건립 시기
1500년(연산군 6)
관련 국가
조선|일본
관련 단체
울산광역시, 울주군
관련 인물
이담룡
높이
4.5m(잔존 최고 높이)
둘레
1,726m
면적
84,493㎡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성안2길 55-8 (언양읍)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6년 12월 27일 지정)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성안2길 55-8 (언양읍)
내용 요약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 사적.
건립 경위

울주 언양읍성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경상도지리지』 총론 조에 "읍성은 둘레 157보, 성내 면적 1결 95부, 우물이 1곳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 읍(邑)에는 토성(土城)이 있으며 둘레가 157보이고 우물이 2개소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경상도속찬지리지』 언양현 조에는 “읍성은 홍무 경오년(1390년)에 토성을 축조하였는데 둘레가 1,417척, 높이 8척이며 주11이 있고 웅덩이 4곳과 우물 2곳이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1500년(연산군 6)에 현감 이담룡(李聃龍)이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당시 둘레 3,064척, 높이 13척이었다. 또한, 첩(堞)이 834개소이고 성안에는 우물이 4곳 있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김용한(1738∽1806)의 ‘차문소루중수운(次南樓重修韻)’에 울주 언양읍성 남문인 진남루가 중수된 것으로 나타나고, 월하(1773~1850)의 『가산집(伽山集)』의 ‘근차영화루중판운(謹次映花樓重板韻)’, ‘근차진남루중수운(謹次鎭南樓重修韻)’에서 진남루를 고쳐 영화루라 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언양읍지』 관액조에 “영화루는 진남문인데 객관 앞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태와 특징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체성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현재 전체 둘레는 1,726m이고, 너비 6m, 잔존 최고 높이 4.5m 가량이다. 이곳은 언양읍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남쪽 아래로는 태화강 상류가 석남사 계곡을 따라 발원하는 남천, 취성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태화강과 합류하면서 시가지 남쪽 부분을 가로지르며 동남향으로 흐르고 있다.

울주 언양읍성의 성벽 몸체는 생토층을 주12 막돌이나 자갈돌을 깔아 지반을 다졌는데 그 두께는 지형에 따라 다르다. 외벽부는 그 위에 두께 30cm 전후의 편평한 판상 석재를 깔아 지대석으로 삼은 뒤 그 위에 기단석을 올려놓고 그 끝에 외벽 면석을 40~80cm정도 안쪽에 놓아 기단부를 조성하고 있다. 외벽 면석은 판상의 자연 대석을 사용하고 지대석과는 수직으로 축조하였는데 기단석은 상단부의 성석들보다 큰 돌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외벽 면석 안쪽 채움의 주4주5을 배치하여 면석이 무너져도 성벽 몸체 자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외벽에서 내벽쪽 2.5m 정도는 비교적 성석이 보이나 내벽부로 갈수록 그 크기가 줄어들어 안두대 크기로 가공되지 않은 성석이나 주6으로 채워져 있다. 북벽과 서벽 내벽부에는 석축 바깥으로 토층이 성벽 몸체를 향하여 경사진 상태로 나타나고 있어 내벽부는 흙으로 내탁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는 동〔望月樓〕, 서〔愛日樓〕, 남〔暎花樓〕, 북〔啓乾門〕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 사방의 성벽 몸체의 중앙을 절개한 형태로서 외측에 반원상의 옹성을 두르고 있다. 이중 남문지가 가장 규모가 크고 성벽 몸체와 동시에 축조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성벽 몸체 축조 후 덧대어 축조하였다. 각 문지 개구부는 남문지의 경우 동쪽이며, 서문지는 남쪽을 향하고, 북문지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동문지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양상을 확인할 수 없다. 언양읍성 남문지와 서문지에서 확돌이 발견되었고, 사대문 주변에서 다량의 기와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기와 지붕을 가진 문루에 목제문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옹성 평면 형태는 반원 형상으로 조성되어 성벽 몸체 개구부를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하였으며 끝부분과 외벽 곡각 지점은 약간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 성벽 몸체 외벽에서 10.3m 가량 돌출하였으며, 옹성의 성벽 몸체 너비는 8.65m, 개구부 너비는 4.5m이다. 성벽 몸체의 문지 너비는 3.5m 가량이다.

언양읍성은 네 곳의 성우(城隅)와 사방 문지 좌우에 각각 방대형의 주14이 배치되어 모두 12개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치성은 성벽 몸체 외벽이나 옹성과 같이 지대석과 대형 면석을 지대석에 수직으로 쌓고 적심석을 배치하는 동일 축조 수법을 가지고 있다. 잔존 치성 길이는 약 8m, 9.44m, 9.7m 등으로 확인되고, 너비는 7.15m, 7.2m, 7m 등으로 확인된다. 언양읍성에서 확인된 것 중 가장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남아 있는 치성은 성벽 몸체와 동시에 축조된 것으로 치성 규모는 길이 10.45m, 너비 8m이며, 잔존 최고 높이는 4.85m이다.

언양읍성 해자는 성벽 몸체 외벽 기단부로부터 6.6~6.9m 정도 떨어져 상부 너비 5.1m, 깊이 1.7m 정도 규모가 확인되었다. 단면은 U자 모양에 가깝고 양쪽에는 자연석을 깔아 생토층의 훼손을 방지하고 목익 시설(木杙施設)이 그 중앙에 설치되었다. 해자는 구조상 해자 바깥 지역이 높게 나타나 만조 시에는 성벽 몸체 외벽 기단부까지 물이 채워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언양읍성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주로 자기류와 옹기류 및 와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자기류는 대접접시, 종지청자분청사기 및 회청 사기와 백자류가 출토되고 있다. 와편은 회청색 경질의 암키와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삼각집선문, 창해파문, 복합문, 선조문이 주로 새겨져 있다. 해자 내에서 나뭇가지를 다듬어 끝을 뾰족하게 만든 것으로 길이 40~60cm 가량, 너비 3cm 내외의 목익이 확인된다. 이외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변천 및 발굴 경위

울주 언양읍성은 1966년 12월 27일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134필지, 40,989㎡). 1991년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울주 언양읍성의 성벽 몸체, 치(雉), 옹성, 우물 등을 확인하였다. 이후 1996~1997년에 걸쳐 동북쪽 성벽 185m을 복원하였다. 2001~2002년까지 종합 학술 조사를 실시하여 성벽 몸체, 치성, 문지(남문, 북문, 서문), 해자 등을 확인하였다. 2009~2010년, 2014년에 걸쳐 북문지 일대 성벽 몸체, 문지, 옹성, 치성, 해자 등을 조사하였다. 2013년에는 8월 남문 영화루 복원 정비 작업을 하였으며, 2014년 11월에는 「울주 언양읍성」 보호 구역 지정(14필지 16,507㎡)이 이루어졌다. 2014년 12월에는 언양읍성 남문지 복원 사업이 추가되었다. 2014~2021년 남문지 및 주변, 북벽, 성내 관아 추정지, 주15, 성내 건물지 등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성벽 몸체의 축조 수법, 치성 구조, 해자 축조 수법 및 중복 양상, 성내 건물지 양상 등을 확인하였다.

의의 및 평가

울주 언양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 가운데 평지 방형 평면 형태로 축조되어 동서남북 사방에 옹성 문지를 갖추고 4성우와 문지 주변 좌우 주16 및 성벽 몸체 바깥 사방에 해자와 목익이 모두 시설된 조선시대 평지 읍성의 전형을 파악할 수 있는 성곽이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읍지』

단행본

동아대학교 박물관, 『언양읍성 종합정비복원을 위한 학술조사 보고서』(2003)
한국성곽학회·울주군, 『울산·울주지역의 관방유적』(한국성곽학회 2011년도 춘계학술대회, 2011)
이일갑, 『조선의 읍성』(국학자료원, 2021)

논문

김광옥, 「언양읍성 남문지 발굴조사 조사성과」(『울주의 성곽』, (재)한겨레문화재연구원, 2014)
주석
주1

『신증동국여지승람』 언양현 성곽조 참고.

주2

『여지도서』 언양현 성지조 참고.

주4

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우리말샘

주5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주6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7

말뚝을 땅에 박고 말뚝의 상단부를 뾰족히 깎은 방어 시설.

주8

모서리에 있는 치(雉).

주9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

주10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좌우에 돌출시켜 쌓은, 네모난 모양의 대(臺).

주11

군대의 창고. 우리말샘

주12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들다. 우리말샘

주13

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 우리말샘

주14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주15

두 개 이상의 수원(水源)이나 못, 우물로부터 물을 모아 하류로 보내는 큰 우물. 우리말샘

주16

성문 양옆에 외부로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네모꼴의 대(臺). 우리말샘

주17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일갑(시공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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