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성황당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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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건축
유적
문화재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테뫼식 석축 산성.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이칭
이칭
고읍성
유적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신라 백제 가야 왜
관련 단체
사천시
높이
340~440cm
둘레
1,954척
면적
64,827㎡(7필)
소재지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93년 12월 27일 지정)
소재지
경남 사천시 정동면
내용 요약

사천 성황당산성은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산45번지에 소재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성황산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성벽의 몸체를 배치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고적조에는 "석축으로 둘레 1,954척, 성내에 샘 1곳, 연못 2곳과 군창이 있었다."라고 한다.

목차
정의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테뫼식 석축 산성.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형태와 특징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산45번지에 소재한 성황산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성벽의 몸체를 배치한 테뫼식 주6 산성이다. 현재는 둘레 약 1,109m, 높이 340~440cm의 성벽 몸체가 잔존하고 있다. 성내에서 북쪽으로는 사천읍이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 사천만이 조망되며 동쪽과 남쪽은 니구산과 구룡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면이 곡선상을 이루며 성 안쪽은 북쪽과 서쪽 일부 경사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평탄하고 성 바깥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사천조에서는 "성황산성은 석성으로 현의 남쪽 2리에 있으며, 높고 험하며 주위가 588보이다. 성내에 샘 1곳, 연못 2곳과 주7이 있었다."라고 한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고적조에서는 "석축으로 둘레 1,954척, 성내에 샘 1곳, 연못 1곳이 있었다."라고 한다.

성황당산성은 성벽의 몸체와 동문지 일원에 대하여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주8 수법을 살펴보면, 성벽의 몸체는 구지표를 걷어내고 생토층 위에 외벽 주9를 설치한 후 주1으로 주10을 하였다. 내벽은 주11이 계단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벽의 몸체 잔존 높이는 340~440cm, 너비 660cm이다. 기본적으로 산탁하여 축조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주13한 부분도 확인된다. 즉 외벽의 경우 주19주14을 이용하여 수평 주15을 맞추어 정연하게 축조한 곳도 확인된다. 이러한 축조 수법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산성 축조 수법과 유사하여 관련성이 주목된다.

동문지(東門址)는 현문(懸門)식으로 목조 주4를 갖춘 구조이다. 문지 부분은 성내 성토층 높이에서 외벽 쪽을 5단 정도 석축을 다 쌓은 다음 그 위에 주16 초석을 배치하고 성내 쪽은 같은 높이의 생토층 위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동문 출입은 사다리와 같은 보조 시설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에서는 수개축 흔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성벽의 몸체와 초석의 위치를 감안하면 주17 구조의 문루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 규모는 성벽의 몸체 높이 440cm, 너비 450cm, 문루는 정면 너비 330cm, 측면 너비 540cm, 초석 간격 270cm로 확인된다. 그 밖에 동문지 위의 정상부에 평면원형 주18가 확인되는데 규모가 직경 1850cm, 깊이 330cm이고 자연석 6-7단 정도 호안(護岸) 석축이 확인된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토기 조각이 출토되며, 기타 청자 조각과 분청사기 조각, 어골문, 목리문이 시문된 회갈색, 적갈색 연질(軟質) 기와 조각이 출토된다.

『태조실록』, 『태종실록』 등에 진주의 성황이 주3으로 봉하여지고, 이 호국백의 제사를 지냈던 진주의 성황당이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사묘조에 성내에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산성은 군사적 기능 이외에도 종교적 기능도 겸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성황당산성은 사천읍성이 축조되기 이전에 사천의 주5로서 문헌 사료를 참고하면,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삼국시대 포상팔국의 하나인 사물국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으며 축조 수법과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삼국시대까지 축조 시기를 소급하여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심봉근, 『한국남해연안성지의 고고학적 연구』(학연문화사, 1995)
『사천성황당산성 기초지표조사보고서』(사천시, 1995)
주석
주1

토목, 건축 따위에 막 쓰는 허드레 돌덩이. 우리말샘

주2

산기슭으로 바싹 올라붙은 땅. 우리말샘

주3

나라를 지키는 으뜸가는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 태조 때에 지리산ㆍ무등산ㆍ금성산ㆍ계룡산ㆍ감악산ㆍ삼각산ㆍ백악 등과 진주의 서낭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4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주5

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 우리말샘

주6

돌로 쌓아 만드는 일. 우리말샘

주7

군대의 창고. 우리말샘

주8

쌓아서 만듦. 우리말샘

주9

건축물에서,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이 되는 부분. 우리말샘

주10

돌이나 벽돌을 쌓을 때에 그 틈서리에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채워 다지는 일. 우리말샘

주11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우리말샘

주12

층계와 같은 모양. 우리말샘

주13

성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일. 우리말샘

주14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주15

벽돌이나 돌을 쌓을 때, 사이사이에 모르타르 따위를 바르거나 채워 넣는 부분. 우리말샘

주16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주17

여러 층. 우리말샘

주18

연꽃을 심은 못. 우리말샘

주19

돌을 다듬음.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일갑(시공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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