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

조선왕조실록 / 태조실록 표지
조선왕조실록 / 태조실록 표지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이칭
이칭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
문헌/고서
권책수
15권 3책
소장처
서울대학교 도서관
내용 요약

『태조실록(太祖實錄)』은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1392년(태조 1) 7월 1일부터 1398년(태조 7) 12월 29일까지 태조 재위 7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서지 사항

『태조실록(太祖實錄)』은 15권 3책으로 정족산본(鼎足山本)은 필사본, 태백산본(太白山本)은 인본(印本)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태조는 재위 7년 만에 정종에게 주5 뒤 상왕(上王) · 태상왕(太上王)의 지위에 있었다. 1408년(태종 8) 5월에 돌아가자 이듬해 8월에 태종이 영춘추관사 하륜, 지춘추관사 유관, 동지춘추관사 정이오 · 변계량 등에게 명해 『태조실록』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춘추관기사관 송포 등이 조선의 실록 편찬이 처음이고 시대가 멀지 않아, 태조 당시 활동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살아 있으므로, 『태조실록』의 편찬이 시기상조라며 후일을 기다리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태종은 주6의 뜻을 굽히지 않고, 태조 원년부터 정종 2년까지의 사초(史草)를 제출하도록 각 사관(史官)에게 명하였다. 그러나 서울 거주자 10월 15일, 지방 거주자 11월 1일로 정해진 제출 기한이 지나도록 주7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사초를 제출하지 않은 자에 대해 자손을 금고(禁錮)하고, 은 20냥의 벌금을 징수하도록 하는 처벌 규정을 만들어 사초 제출을 독려하였다. 1410년 정월부터 하륜 · 유관 · 정이오 · 변계량 등이 주축이 되어 춘추관기주관 조말생 · 권훈 · 윤회, 기사관 신장, 외사관(外史官) 우승범 · 이심 등과 함께 『태조실록』 편찬에 착수해 1413년 3월에 완성하였다.

편찬 완료 직후 출판하려 했으나 정부에서 번란중복(繁亂重複)된 기사가 많다고 주1를 주장해 출판되지 못했다. 1438년(세종 20) 변계량이 지은 헌릉(獻陵) 주2 가운데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 대해 사실과 어긋난 내용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세종은 이를 개수하도록 하였다 이와 관련해 당시 편찬 완료된 『공정왕실록』( 정종실록)과 『태종실록』도 아울러 개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4년 뒤인 1442년 춘추관감관사 신개, 지관사 권제, 동지관사 안지 및 집현전학사 남수문 등의 주관으로 실록의 개수가 이루어졌다. 1448년에 지춘추관사 정인지 등이 다시 주3하고, 1451년(문종 1) 고려의 주8 우(禑)를 신우(辛禑)로 고치는 개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태조실록』은 1431년(세종 13)에 『태종실록』이 완성되자, 『공정왕실록』 · 『태종실록』과 함께 고려시대의 실록을 보관해 둔 충주사고(忠州史庫)에 봉안하였다. 얼마 뒤 영구 보존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1445년까지 삼조실록(三朝實錄) 3부를 더 필사해 춘추관과 충주 및 신설한 전주 · 성주 사고에 각각 1부씩 봉안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된 정족산본의 태조 · 정종 · 태종의 삼조실록은 이때 필사해 전주사고에 봉안한 것이다.

편찬관 및 특징

『태조실록』의 부록에 보면, 편수관으로 하륜과 증보 편수관으로 정인지가 기록되어 있다.

태조는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인 1398년 9월 5일에 세자에게 양위했으므로 재위 기간은 이때까지이지만, 『태조실록』에서는 그해 말까지 수록 범위로 하였다. 이 시기는 조선 개국 초기로서 신왕조가 사대정책 · 억불숭유정책 · 농본정책을 기본 정책으로 내세우는 한편, 고려 왕족과 신하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제도 개편을 착수해 기반을 조성해 나간 시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왕자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는 등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개국 초창기의 주4은 물론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요긴하다. 조선 초기 다른 실록과 같이,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것이다.

구성과 내용

『태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1392년 7월부터 1398년 12월까지 태조 재위 7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부록으로 편수관 명단과 증보 편수관 명단이 있다.

현황

1920년대 이후 조선 역대 왕(태조∼철종)의 실록이 여러 차례 영인될 때, 함께 영인 · 간행되었다. 1972년에 모두 2권의 번역본 『태조강헌대왕실록』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였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sillok.history.go.kr)에서 번역본과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행본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연구』(국학자료원, 1998)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동방미디어, 1999)
배현숙, 『조선실록연구서설』(태일사, 2002)
오항녕,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 연구』(일지사, 2009)

논문

강문식, 「조선왕조실록 연구의 현황」(『조선시대사학보』 74, 조선시대사학회, 2015)
신석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사총』 5, 1960)
신석호, 「태조실록해제」(『국역 태조강헌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신석호, 「태종실록해제」(『국역 태종공정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정구복, 「조선초기 춘추관의 실록 편찬」(『허선도정년기념사학논총』, 1987)
차용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태도와 사관의 역사인식」(『한국사론』 6, 1979)
차용걸, 「실록·사관·사고에 대하여」(『사고지조사보고서』, 국사편찬위원회, 1986)

기타 자료

주석
주1

고쳐서 바로잡거나 다시 만듦. 우리말샘

주2

비석에 새긴 글. 우리말샘

주3

책 따위의 내용을 더 보태고 고쳐 펴냄. 우리말샘

주4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事實). 우리말샘

주5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다. 우리말샘

주6

책이나 문서 따위를 저술하고 편집함. 우리말샘

주7

조선 시대에,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둔 사기(史記)의 초고(草稿). 실록(實錄)의 원고가 되었다. 우리말샘

주8

임금을 몰아냄. 또는 그 임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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