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주 암벽에 2구의 여래입상이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되어 있고, 여기서 동떨어진 작은 암벽에 1구의 보살입상이 얕게 부조되어 있다.
주 암벽의 오른쪽 여래입상은 몸을 약간 옆으로 튼 모습을 하고 있다. 어깨까지는 생동감 있게 선각되었으나 하체의 선각은 불분명하다. 머리 위의 육계(肉髻)는 생략되었고, 네모진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긴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어깨는 반듯하나 너비가 좁아 위축되었다. 상체에는 한 줄의 선으로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법의를 표현하였다. 왼손은 허리 밑으로 내렸으며 오른손의 수인은 분명하지 않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왼쪽의 여래입상은 하반신까지 나타내었다. 그러나 세부 표현이 간략하고 하체로 내려갈수록 선각은 힘이 빠져 생동감을 잃고 있다.
작은 암벽의 보살상은 주 암벽의 여래상과는 달리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얕게 부조되어 있다. 얼굴은 양감이 풍만하며 눈을 지긋이 감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머리는 스님 머리이며, 보관은 표현되지 않았다. 긴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오른손은 허리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지었다. 허리에는 접힌 군의(裙衣) 상단과 허리띠 매듭이 표현되었다. 스님 머리인 점으로 보아 지장보살(地藏菩薩)로 생각된다. 하지만 세부 표현에 모호한 점이 많아 단정할 수는 없다.
1688년(숙종 14년)에 건립된 낙영산공림사사적비(落影山空林寺事蹟碑)에는 이들 마애불이 장육미륵불상3구(丈六彌勒佛像三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 독립된 마애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