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 · ‘구변도국(九變圖局)’ · ‘구변도(九變圖)’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 곧 진단의 왕조 변혁이 아홉 차례에 이른다는 예언서로서, 저자는 단군조선 때의 신지(神誌)라고 전해져 오나 신빙성이 없다.
내용은 그 전문이 밝혀지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건목득자(建木得子)’가 요지로 되어 있다. 이는 이(李)자의 파획(破劃)으로 ‘십팔자(十八子)’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씨 성을 가진 자가 9왕조 중의 하나를 세운다는 것이다.
권근(權近)이 지은 건원릉(健元陵)의 신도비문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기사에 따르면 구변국과 ‘십팔자’설은 단군시대부터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지금에야 그 징험(徵驗)이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동문선≫과 ≪금석총람 金石總覽≫ 가운데의 <최사전묘지 崔思全墓誌>에도 보인다. 이 비문에는 두 설을 담고 있는데, 첫째는 목자(木子)가 다시 삼한을 통치한다는 내용의 글이 지리산 바위 속에 있던 것을 이인(異人)이 가져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건목득자(建木得子)가 조선의 왕이 된다는 글이 서운관(書雲觀) 구장(舊藏)의 비기(秘記)에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용비어천가≫ 3권 15장에도 “공주강 남ᄋᆞᆯ 저ᄒᆞ샤 자손ᄋᆞᆯ ᄀᆞᄅᆞ치신ᄃᆞᆯ 구변지국이 사ᄅᆞᆷ ᄠᅳ디리잇가(公州江南, 畏且訓嗣, 九變之局 豈是人意).”라는 노래가 보이는데, 이는 이씨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혀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 訓要十條> 가운데 거현(車峴) 이남과 공주강(公州江)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배역(背逆)의 형상이라 하여 그 지방의 인재등용을 경계하였던 제8조를 풍자한 것이다. 이성계의 선조가 바로 이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의 주(註)에는 ≪구변지국≫이 신지의 찬(撰)이라는 점을 밝히면서 권위를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용비어천가≫ 제16장의 주에 따르면 고려 숙종 때 김위제(金謂磾)가 한양 천도의 상소문에 신지설과 도선(道詵)의 도참설을 인용하였다 하므로 ≪구변지국≫의 성립은 적어도 숙종 이전에도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도참사상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널리 유포된 것으로 모두 정치와 밀착되어 있었다. 즉, 왕조의 교체기에 있어서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빠짐없이 사용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