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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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탱화 / 북두신군
칠성탱화 / 북두신군
도교
인물
도교에서 사람의 죽음 및 운명을 관장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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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도교에서 사람의 죽음 및 운명을 관장하는 신.
내용

사람의 죽음 및 운명을 관장하는 사명신(司命神)의 기능을 한다. 북두는 대웅성(大熊星) 또는 북두칠성이라고도 하며, 각각 천추(天樞)·선(璇)·기(璣)·권(權)·형(衡)·개양(開陽)·요광(搖光)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천추는 천(天)과 양덕(陽德), 선은 지(地)와 음형(陰刑), 기는 인(人)과 장해(狀害), 권은 시(時)와 천리(天理), 형은 음(音)과 방향, 개양은 율(律)과 천식오곡(天食五穀), 요광은 성(星)과 병(兵)을 관장한다고 한다. 북두성은 원래 시간 계산과 천문 관측에 이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천계와 인간계 사이의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에 근거하여 신격화되었다.

『도장(道藏)』에는 북두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는데,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원시무량도인상품묘경사주(元始无量度人上品妙經四注)』 등에는 별의 명칭도 탐랑(貪狼)·거문(巨門)·녹존(彔存)·문곡(文曲)·염정(廉貞)·무곡(武曲)·파군(破軍)이라 하여 각각 자(子)·축해(丑亥)·인술(寅戌)·묘유(卯酉)·진신(辰申)·사미(巳未)·오(午)의 해에 출생한 사람들을 맡도록 하였다.

더욱 후세에 와서는 보성(輔星)과 필성(弼星)이 더해져 북두 구성이 되어 구황신(九皇神)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의 기록은 단편적으로 보이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김유신조(金庾信條)에는 김유신이 칠요(七曜: 해·달·수성·화성·목성·금성·토성)의 정기를 받아 등에 칠성(七星)의 무늬가 있었다고 하며,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소격전(昭格殿: 도교에 관련된 일을 맡아 보던 관아)의 태일전에 그려져 있는 칠성신의 형상이 마치 머리를 풀어 놓은 여인과 같다고 하였다.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시중(侍中)의 벼슬에 있을 때 칠성신에 기도하였는데 그의 정성에 감복한 신들이 삼한을 통치하도록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태종실록(太宗實錄)』 정월조에도 태종이 대사헌 이순(李順)에게 북두신 경배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나와 있다. 이러한 북두신앙은 우리 민속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익수연명(益壽延命) 및 초복피액(招福避厄)의 성향을 강화해 놓은 것이 한 예이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두하강변증설(二斗下降辨證說)」에는 인간으로 하강한 북두노인이 단명한 아이의 수명을 90살까지 연장시켜 주었다는 설화를 담고 있으며, 서울 인왕산의 칠성암에는 과거에 급제하려는 유생(儒生)들이 찾아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능화는 『조선도교사』에서 이 신앙과 장례풍습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풍습에 따르면 시신의 밑에 일곱 개의 구멍이 뚫린 송판을 깔거나 종이에 북두형상을 그려 넣는데, 이것을 칠성판이라 하며 두께는 오푼[五分]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북두가 죽음을 관장하였기 때문이며, 북두신군의 힘이 살(煞)을 제압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여 왔던 북두신앙은 독립된 형태로서는 남아 있지 않고 불교와 결탁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여 왔는데, 사찰에 속해 있는 칠성각이 이를 나타내고 있다.

칠성각에는 북두대성칠원성군(北斗大聖七元星君) 등이 모셔지며, 칠성의 강림을 청할 때에는 칠성청(七星請)이라는 사설을 외운다. 칠성각으로 구현되고 있는 북두신앙은 전통 토속신앙과 불교의 결합관계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태종실록(太宗實錄)』
『한국의 도교사상』(차주환, 동화출판공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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