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이언휴(李彦休). 자는 홍도(弘道). 호남 출신. 청학상인(靑鶴上人)이라 불리는 위한조(魏漢祚)를 사사하였으며, 그 밖에 도우(道友)로는 채하자(彩霞子)·취굴자(翠窟子)·아예자(鵝蕊子)·계엽자(桂葉子) 등 8인이 있었다.
조여적(趙汝籍)이 지은 『청학집(靑鶴集)』에는 이들 사우(師友)에 관한 행적과 그 생애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금선자는 한라산의 영기로 태어났고, 고담(高談)·세평(細評)·유세·변설에 뛰어났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인 정탐꾼이 조선 각처에 깔려 있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전란의 조짐이 보이자, 금선자는 그 특유의 점성술에 의해 전쟁 발발을 예언하고, 또 이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도우 2인과 같이 대마도·하카타(博多)·오사카(大阪) 등지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또, 도우 1인과 두만강 건너 여진의 옛땅에 들어가서, 그곳의 지세를 보고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국을 예상했고, 만년에는 조현지(曺玄志)·이사연(李思淵) 등과 병란을 피하려고 제주도 한라산으로 가던 도중 무주(茂州)의 덕유산에 자리잡고 약초캐기와 짚신만들기로 살아갔다고 한다.
『청학집』에 보이는 이언휴는 단군 이래 도맥의 계보 및 역사·지리·탁자(拆字 : 문자의 부수 등을 분해하여 길흉을 점침)를 통한 예언, 천상(天象)에 의한 성점(星占), 관상과 점몽(占夢) 등에 능통하였다.
이언휴를 비롯한 그의 도우들의 특징은 현실의 명예와 이익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였고, 그들의 활동범위가 한국·중국·일본의 국제무대였다는 점, 유가 계통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항거의식과 조선의 천하통치시대를 전망했다는 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