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매한 인품과 남다른 절개를 가졌던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방외(方外)의 뜻을 품고 협소한 신라에서 벗어나 중국 오월(吳越) 땅을 찾아가서 도술이 높은 사부를 만나 명산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려고 도우(道友)를 찾고 있던 김대세(金大世)를 만나 그와 함께 587년(진평왕 9) 7월 남해에서 배를 타고 오월 땅을 향해 떠났는데, 그 뒤 두 사람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신라에서는 선도(仙道)를 구하여 해로로 중국 땅을 찾아 모험을 감행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후세의 선파(仙派)에서는, 구칠과 대세를 환인(桓因) 이래의 정통파가 아닌 별파의 선가(仙家)로 간주, 신라 초의 기인 호공(瓠公)으로부터 시작하여 감시선인(旵始仙人)과 물계자(勿稽子)로 이어지는 유파에 소속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