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함열 출신.
1555년(명종 10)에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임피(臨陂)에서 살다가 애첩과 당질간의 간통사건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중이 되었다.
법명을 총지(摠持)라 하고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서 은거하였다. ≪해동이적 海東異蹟≫에 의하면 후에 경상도 의령의 한 암자에서 지낼 때 부주(符呪) · 상위(象緯) · 감여(堪輿) · 추점(推占) 등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을 무주 부근에서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먼저 정신통일을 하기 위하여 잠 안 자는 법을 익히고, 다음 벽곡(辟穀 : 곡기를 끊음.)하면서 ≪참동계 參同契≫와 ≪황정경 黃庭經≫의 묘리를 터득하였고, 이를 운용하여 내단수련(內丹修鍊 : 호흡법 등으로 장수를 누리려는 도교 수련법의 일종)의 극치인 신태(神胎) 일보 직전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芝峯類說≫에 따르면 그의 나이가 90살이 되었어도 거의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대천을 떠돌아다녀 사람들은 그를 지선(地仙)이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