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단군을 숭배하는 신종교단체이다. 김억순은 190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출생하여 14세에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했는데, 그때의 신앙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와 옥황상제(玉皇上帝) · 칠성성군(七星聖君) 등 3위신이었다. 그러나 김억순은 신앙심이 깊어짐에 따라 구천상제는 단군성조로, 그리고 옥황상제는 증산천사(甑山天師)로 신봉하였다.
8·15광복 후 그는 서울 낙원동 자택 2층에다 국조단군성조를 모시고 그 좌우에 구천상제와 옥황상제를 모시는 천단(天壇)을 조성하고, 단군 숭배를 주로 하는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매월 초삼일 『천부경(天符經)』을 외우고, 단군국조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축문을 지어 제천(祭天)을 계속하였다.
1946년 3월에는 신도 12명을 주축으로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의 목적은 일심(一心) · 상생(相生) · 거병(去病) · 해원(解寃)이었으며, 4대 강령으로는 경천(敬天) · 명덕(明德) · 정륜(正倫) · 애인(愛人)을 제시하였다. 이어 1948년에는 국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하였다.
1962년에는 서울 암사동에 단군의 천진(天眞)을 모시고 천진궁(天眞宮)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그리고 여기에 국조단군국교중앙총본부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는데, 혹은 천조단군국교(天祖檀君國敎)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때는 신도가 1,500여 명에 달했으며, 개천절(음력 10월 3일) · 어천절(御天節:음력 3월 16일)의 제천행사는 물론 매월 초삼일의 제향도 계속하였다.
김억순은 1967년 집에 화재가 난 뒤 대전으로 이사하여 보문산에 단군 동상 건립을 추진하다가 실패하고, 같은 해 7월 다시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돌아와 서울 남산에 단군 동상을 건립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또한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 후에는 암사동 천진궁도 철폐되자 교단활동은 거의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