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학회는 단군교 계통 종단의 하나이다. 1909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민족정신을 하나로 모을 민족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기(李沂) 등이 단학회를 결성하였다. 단학회의 주요 지도자들은 대부분 독립운동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옥사했다. 1963년 이유립이 단단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1965년에는 기관지 『커발한』을 창간하였다. 1979년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이 수록된 『환단고기』를 발간했다. 1986년 이유립이 사망하면서 활동이 미미해졌다.
1909년 이기(李沂)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는 단학회(檀學會)를 모체로 하여 1963년 이유립(李裕岦)이 조직하였다.
이 단체의 모체인 단학회는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 대영절(3월 16일)에 이기 · 계연수 등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단학회조직을 서고(誓誥)하며 단학강령 3장을 선포함으로써 창립되었다.
단학강령은 단단학회에서도 기본 강령으로 받들어지는데, ① 제천보본 이구진실(以求眞實) ② 경조흥방 이구화평(以求和平) ③ 홍도익중 이구통일(以求統一)의 3가지이다.
단학회 창립 무렵에는 이미 민족 고유 종교를 표방한 단군교(뒤의 대종교)가 창립되어 있었는데, 이기 등은 나철과 민족상고사 인식 및 단군관, 고유 종교 이해 등에서 의견을 달리하였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체의식이 필요하고 민족정신을 귀일시킬 구심체적 종교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했지만, 이기 등은 재야에 전해지던 <태백일사>나 <단군세기> 등의 문헌에 기록된 역사인식-고유종교관에 토대하여 민족종교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단학회는 특히 단군신앙의 삼신설(三神說)에 대한 정의와 신시 · 개천 · 단군기원 등 핵심 문제에서 나철의 단군교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단군교와 별도로 단학회라는 이름하에 단체를 창립하였다.
이 단학회는 태백교(太白敎)라는 이름의 종교와 이명동체(異名同體)임을 표방했는데, 무포교제(無布敎制) 자아신앙(自我信仰)을 신앙원칙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는 다른 교단과 차별성이 있었지만, 종교단체에 준한 교단조직을 영위하면서 삼신하느님(삼신일체상제)을 신앙 대상으로 하여 일정한 의례를 거행하고 삼일신고-천부경 등의 단군교계 경전을 중시하는 데서는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학회는 초대 대종사인 이기가 한일합방이 임박한 시국에 분개하여 1909년 7월 절식 자결함으로써 침체되었지만, 계연수와 최시흥 · 이덕수 · 이상룡 등 독립운동가를 지도자로 삼아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래서 삼일운동 후에는 최시흥을 중심으로 천마산대를 조직하여 항일 유격투쟁을 전개하였고, 이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 의민사(義民社) · 벽파대(碧波隊) ·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의 무장독립운동에 그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단학회의 주요 지도자들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옥사했는데, 계연수 · 최시흥 · 이상룡 · 이덕수 등이 모두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거나 옥사하였다. 그러나 단학회는 무장투쟁 과정에서도 단학회는 단학회보를 8호까지 발간하였으며, 1919년 3월 대영절에는 국내의 기미독립선언에 맞추어 <조선인십보장(朝鮮人十寶章)>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덕수의 전사와 함께 회원들이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흩어졌으며, 단학회 활동은 침체되었다.
해방 후 단학회는 일제에 의해 수감되었던 이용담(李龍潭)이 출감하여 평양에서 단학회를 재건하고 제5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공산 치하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수는 없었다. 특히 기관지 『태극(太極)』의 1946년 신년호에 <신탁통치반대론(信託統治反對論)>을 게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태극』의 주간 이유립이 구속되고, 『태극』은 폐간되었다. 그러나 6 · 25전쟁 때 이유립이 월남에 성공하여 1954년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1963년에는 단단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유립이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65년에는 기관지 『커발한』을 창간하였다. 명칭을 단단학회라고 한 것은 『신단실기』의 “사물의 견고한 것을 보고 이르기를 단단이라 한다[見物之堅固曰檀檀].”라고 한 것 등에 의거한 것이다.
단단학회는 이름을 바꾸면서 태백교라는 종교적 색채에서 분리하여 민족의 종교 · 철학 · 역사를 연구-실천하는 단체로의 전환을 천명했지만, 고유 종교라고 주장하는 태백교를 중심으로 민족적 종교통일운동을 추구하는 점에서 이전의 입장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단학회와 관련하여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1979년 공개되어 재야 역사학계의 상고사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던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이 단체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점이다. 『환단고기』는 단학회의 계연수가 민간에 숨겨 전해 오던 사서들을 묶어서 1911년 편집했다는 역사서로, <삼성기> · <단군세기> · <북부여기> · <태백일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 상고사가 환인(桓因)의 환국(桓國)시대(7대 3301년)에서부터 시작하여 환웅의 배달시대(18대 1565년)를 거쳐 단군조선(47대 2096년)으로 이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상고시대의 한민족은 우수한 문화와 강대한 국력을 가지고 중국을 압도하는 역사를 영위했던 것으로 서술한다.
이 책은 편집된 이래 오랫동안 숨겨져 왔다고 하며, 1979년 단단학회 회장으로 있던 이유립과 조병윤에 의해 공개된 후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열망하는 일반의 정서에 부응하여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주류 사학계에서는 위서라고 하여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단학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국사교과서의 상고사 부분 내용이 식민사학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재야학계에서 국사찾기운동을 전개할 때 이에 참여했으며, 특히 『환단고기』를 토대로 한 역사 개편을 주장했었다.
단단학회는 한민족사와 종교에 대한 특유의 이론을 보급하기 위해 회일강좌(回日講座) · 국사바로찾기강연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환단휘기(桓檀彙記)』 · 『광개토성릉비문역주(廣開土聖陵碑文譯註)』 · 『커발한문화사상사』 · 『대배달민족사(大倍達民族史)』 등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1986년 중심 인물 이유립이 사망하면서 활동이 희미하게 되었다. 이유립에 이어 양종현(梁宗鉉) 등이 회장을 이으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활동은 미세하다.
재 본부는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단학동 산 52번지에 있으며, 일명 ‘커발한[居發桓]개천각’이라는 대시전(大始殿)과 정수관(靜修觀)이 있다.
이 회에서는 천일신(天一神), 즉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를 신앙 대상으로 하고, 그 진상(眞相)을 찾아 심(心) · 기(氣) · 신(身)을 수련하며, 대인접물(對人接物)의 모든 사건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위한 종지(宗旨)와 염표문(念標文)을 내세우고 있다.
종지는 ‘위로 천신을 받들고 아래로 모든 생민을 교화한다[上以崇奉天神 下以接化群生].’는 것이고, 염표문은 ‘일신상제가 인간에게 삼신일체의 원리인 충을 내려주시니 그 성이 광명에 통하며, 인세(人世)를 다스려 교화함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一神降衷性通光明 在世理化弘益人間]’는 것이다.
이 단체에서는 자아 인간은 능히 삼신하느님을 대표하여 세계 인류를 구원하고 봉사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이를 인대천주의(人代天主義)라고 부른다. 인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심은 삼신일체상제가 삼진귀일(三眞歸一)의 원리에 입각하여 인간에게 내려준 심성(心性)이라고 보고, 인간은 능히 삼신일체상제의 기능을 대행할 수 있고 또한 인간의 능력에 의해 인간세계를 능히 신국(神國)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단학회에서는 이와 같은 인대천주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행동강령과 세계관으로 삼강사령(三綱四領)을 든다. 삼강은 앞에 소개했던 제천보본-경조흥방-홍도익중의 3원칙이다. 그리고 사령은 ① 허조동체(虛粗同體), ② 개전일여(個全一如), ③ 지생쌍수(智生雙修), ④ 형혼구연(形魂俱衍)의 4가지 교설이다.
허조동체는 천지만물은 상(象=粗)과 법칙(法則=虛)이 대일체로 결합해 있으며, 인간세계 역시 자연현상[粗]과 자유의식[虛]이 합일체로 움직인다는 원리이다.
개전일여는 개체는 전체에 대한 기본 요소이며 전체는 개체의 총괄이기 때문에, 개체가 개체를 위해 ‘알고 살고 일하는 것’은 전체를 위하는 것이 되며, 전체를 위하는 것은 동시에 개체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생쌍수는 하느님에게 받은 지혜(性=관념세계)와 물질생활의 복리는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智)는 생(生)의 가치를 나타내며, 생은 지의 진의(眞意)를 계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형혼구연은 영혼과 육체는 장존불멸(長存不滅)한다는 원리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원래 자연의 양기[一元良氣]로부터 태어나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자연이란 실은 기화작용(氣化作用)이며, 이것은 끝까지 일원기에 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신념을 토대로 단단학회는 삼신일체의 원리에 입각하여 전세계 인류의 광명전일화(光明全一化)운동의 선편자(先鞭者)로서 홍익인간의 세계를 문화적으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회의 기본 경전으로는 홍익사서(弘益四書)와 이화삼경(理化三經)이 있다. 홍익사서는 천제 환인 시대 때부터 구전해 오던 경전이라는 『천부경』과, 역시 천제 환인의 가르침을 환웅천황이 전한 것이라는 『삼일신고』, 고구려 국상 을파소가 지었다는 『참전계경』, 고려 때 이암이 썼다는 『태백진훈』 등이고, 이화삼경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를 해석한 『신시개천경(神市開天經)』과 광개토왕릉비를 해석한 『광개토지경(廣開土地經)』, 훈민정음을 해석한 『훈민정음경(訓民正音經)』 등이다.
이 회의 본부 대시전(大始殿)에는 민족사상의 위인과 학회 역대 지도자들의 영정을 삼황오제(三皇五帝) · 삼문오무(三文五武) · 삼종오정(三宗五正) 등으로 부르며 봉안 · 숭봉하고 있는데, 삼황은 환웅천황과 치우천왕, 단군왕검 등 3인이고, 오제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 광개토왕, 발해 태조 대조영, 대금국 태조 아골타, 조선 세종 등 5인이며, 삼문은 고구려 국상 을파소, 고려의 서희 · 이암 등 3인이고, 5무는 고구려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고려 윤관과 최영, 조선 이순신 등 5인이다.
삼종오정은 단단학회의 역대 지도자였다는 이기 · 이상용 · 신채호 등 3인의 대종사와, 계연수 · 홍범도 · 오동진 · 최시흥 · 이덕수 등 5인의 대승정을 가리킨다.
이 단체에서는 마리산 단학동에 커발한 개천각을 짓고 매년 두 번 3월 16일 한맞이[大迎節]와 10월 3일 개천절마다 제천의식을 베푼다. 한맞이는 삼신일체의 기념일이며, 개천절은 환웅님이 오신 날을 기념한 것이다. 그 밖에도 민족사의 특정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 있는데, 5월 5일은 광개토왕의 다물통일(多勿統一)을 기념하는 날인 광개절(廣開節)이고, 1월 28일은 세종대왕의 정음문화(正音文化)를 기념하는 날인 훈민절(訓民節)이며, 1월 1일 설날에도 조상의 날이라 하여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그런데 단단학회에서는 단군왕검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보지만, 이 회에서는 단군왕검을 국조로 보지 않는다. 곧 단군보다 1565년 앞서 환웅천왕의 신시개천(神市開天:배달국의 건국)을 한국 민국 역사의 기원으로 본다.
그러므로 신앙상으로는 환인 · 환웅 · 환검(단군)을 천신 · 지신 · 인신으로 보아 이 3신이 일체라는 삼신일체설을 믿지만, 역사와 문화상으로는 이들 3신이 각각이라는 삼신각개설(三神各個說)을 믿고 있다.
단단학회에서는 우리 역사의 정통이 기원전 3897년 환웅천왕의 배달 건국에서 비롯하여 단군조선―북부여(원시 고구려)―고구려(본 고구려)―대진(大震, 중 고구려)―고려(후 고구려)―조선―임시정부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른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