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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민백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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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민백충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고활자본(후기목활자). 1909년 저자의 아들 상혁(尙爀)·종혁(鍾爀) 등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 최익현(崔益鉉)의 서문과 권말에 송병선(宋秉璿)·김현옥(金顯玉)·정면규(鄭冕圭)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은 시 2수, 서(書) 14편, 유사·잡저 각 1편, 권2는 부록으로 지구서간절략(知舊書簡節略) 26편, 만장(挽章) 37수, 제문 8편, 서술(敍述)·유사·언행쇄록(言行鎖錄) 각 1편, 가장(家狀) 1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묘표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書)는 주로 『소학』·『가례(家禮)』를 중심으로 학문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이 많다. 「답송민용서(答宋民用書)」와 「답박조현서(答朴肇絃書)」는 상례와 제례에 관해 의심나는 것을 물어온 데 대해 답변한 것이다. 치상(治喪)·관곽(棺郭)·제복(祭服)·반함(飯含) 등과 관련, 문헌상에 밝혀지지 않은 것에 관해 해설하고, 우제(虞祭)·졸곡(卒哭)·부사(祔祀) 등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잡저인 「선조농은공민안부세일제의식(先祖農隱公閔安富歲一祭儀式)」은 자기 선조의 세일사(歲一祀)에 관한 의식을 설명한 것이다. 설찬(設饌)에서 사신(辭神)까지 각각 별도의 규정을 두었는데, 설찬과 관련해 『가례』에 탕(湯)에 관한 기록이 없다며 설찬도식에서 탕은 제외하고 있고, 기타 진행 의식도 한결같이 『가례』를 주종으로 해서 꾸민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리할 수도 있다는 융통성을 보인 점이 특징이다.

그밖에도 「황고괴헌부군유사(皇考槐軒府君遺事)」는 그의 할아버지의 일생의 행적을 요약해 기록한 것으로, 가장(家狀)의 예에 따른 것이다. 부록의 「지구서간절략(知舊書簡節略)」은 친구들이 보낸 서신을 초략(抄略)한 것인데, 『가례』와 『소학』 등에 대한 논변이 많다.

그의 지행(至行)에 대해 감격한 고을 사람들이 그를 장문(狀聞)하기 위해 천장(薦狀)을 작성하자,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이를 빼앗아 불태워 버렸다. 그는 평소 법도에 엄격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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