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석굴 높이는 4.25m, 본존상은 2.18m, 우협시보살상은 1.92m, 좌협시보살상은 1.8m.
거대한 자연 암벽을 뚫어 석굴을 만들었는데,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내부 평면은 방형(方形: 네모반듯한 모양)이며 천장은 궁륭형(穹窿形: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주위가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었다. 독립된 삼존석상을 석굴 내부 벽면에 붙여서 안치하였다.
별석(別石)의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본존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높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몸에 비해 큰 얼굴에는 삼국시대 불상에 보이던 친근감 있는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이 서린 모습이다.
체구는 어깨가 딱 벌어져 당당한 모습이며, 통견(通肩)의 법의는 얇아 몸의 굴곡을 드러낸다. 옷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묵직한 신체의 조형 감각을 강조해 준다. 하체는 법의의 주름으로 덮여 있는데, 법의의 자락은 대좌 아래로 늘어져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도상적(圖像的)으로 보면, 이 본존상은 오른손이 무릎 밑까지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왼손도 결가부좌한 무릎의 중앙에 오지 않는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불상의 최초의 예로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본존상의 뒤쪽 벽면에는 장식이 없는 두광과 신광을 새겼으며, 그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를 돌려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다.
좌우의 보살상은 동일한 양식을 보이는데, 삼면보관(三面寶冠)의 형식과 목걸이, 보주형(寶珠形)의 두광에서는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길쭉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한 쪽 다리에 힘을 뺀 초보적인 삼곡(三曲)자세 그리고 머리 광배의 화려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장식 등에는 새로 수용된 당나라 양식의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굴사원 대부분은 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그 위에 목조 전실(前室)을 세운 소규모의 석굴사원을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석굴은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