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효시는 궁예(弓裔)가 세운 태봉의 납화부(納貨府)와 물장성(物藏省)이라 하겠다. 고려 태조도 태봉의 제도를 따라 물장성을 두었으며, 광종 때는 이를 보천(寶泉)으로 고치더니 뒤에 소부감(少府監)으고 개칭하였다.
충렬왕 때는 내부감(內府監)으로 고치고, 공민왕 때는 다시 소부감으로 개칭하였으나, 곧 소부시(少府寺)로 고쳤다. 공양왕 때 이를 혁파하고, 그 임무는 내부시(內府寺)에 병합하고 군자시(軍資寺)를 두어 군사상에 필요한 물자와 그 저축의 일을 맡게 하였다. 또한, 전수도감(轉輸都監)을 혁파하고, 그 전곡(錢穀)의 문서를 군자시에 맡겼다.
1392년(태조 1)에 고려의 제도를 따라 군자감을 설치하고 관원으로는 도제조(都提調) 1인은 의정(議政)이 겸임하고, 제조 1인은 호조판서가 겸임하며, 정 1인, 부정(副正) 1인, 첨정(僉正) 2인, 판관(判官) 3인, 주부(主簿) 3인, 직장(直長) 1인, 봉사(奉事) 1인, 부봉사(副奉事) 1인, 참봉 1인을 두었다가 뒤에 부정 1인, 첨정·판관·주부 각 2인, 직장·부봉사·참봉 각 1인을 감원하였다. 1675년(숙종 1)에 다시 직장을 두었다. 이속(吏屬)으로는 서원(書員) 24인, 고직(庫直) 8인, 문서직(文書直) 1인, 사령(使令) 9인, 군사 4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