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묵이 춘천에서 곤궁한 세월을 보내던 38세 때 지었다. 1905년(광무 9)에 간행된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집(重庵集)』에는 서문만 실려 있다. 1982년에 이항로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필사본이 경문사(景文社)에서 영인·간행되었다.
14권 6책. 필사본.
김평묵은 『근사록』이 도학(道學)에 의해 제시된 ‘마음을 전하는 긴요한 방법(傳心之要訣)’을 보여주고, 오경과 사서로 들어가는 입문 성격을 띤, 간결하고 함축적인 찬술이라면서 주석에 힘을 쏟았다. 송대 섭채(葉采)의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와 그 책의 미비점과 의문점을 보완한 조선시대 정엽(鄭曄)의 주석서인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를 기본 자료로 삼고 중국과 한국 학자들의 제설(諸說)을 종합해 집대성하였다.
김평묵은 이항로(李恒老)의 제자로 화서학파(華西學派)에 속하는 인물이며, 화서학파는 서구열강의 동점(東漸)을 ‘도학에의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철저한 이단배척과 투철한 정통의식에 기초하여 소중화(小中華)의 문물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사록부주』는 도학의 정통인 주자학적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서학을 포함한 이단에 물들지 않는 사회기풍을 조성하려는 위정척사정신(衛正斥邪精神)에서 형성된 작품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마음이란 천지에 있어서는 일음일양(一陰一陽)하여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고, 인간에 있어서는 한 몸을 착하게 하여 제가, 치국, 평천하하여 천지가 바른 자리를 찾고 만물이 배양되는 근본”이라 한 다음, “이 마음의 이치는 요순 같은 성인이나 보통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현실적으로 악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받은 기품과 물욕 탓인데, 이것을 교정하는 교화의 법도인 성인의 가르침이 이단사설(異端邪說)로 위협받게 되어 안타까워 이 글을 짓는다고 하였다.
『근사록』의 체재를 따르고 있으며, 여기에 인용된 유학자는 86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에는 이황(李滉)을 포함한 우리나라 유학자 14명도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