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 출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경(文卿), 호는 중산(中山), 아버지는 박재범(朴在範)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소년시절 고향의 보성학원(普成學院)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18세 때부터는 조긍섭(曺兢燮)의 문하에서 도학(道學)에 정진하였다. 청년시절 송준필(宋浚弼)·하겸진(河謙鎭) 등 당시의 명망 있는 유학자들을 방문했으며, 시흥(始興)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서 열린 학술 강습회에 참여한 이후 유교의 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이송학사전문학교(二松學舍專門學校)에 유학하면서 양명학자 야마다[山田準]와 이노우에[井上哲次郞], 주자학자 우찌다[內田周平] 등 당시 일본 학계의 석학들과 교류했던 사실은 조선유학자로서 유일한 경우이다.
박장현은 경학(經學)을 재구성함으로써 유교의 재정립과 민족사의 재인식을 모색하였다. 경학의 방법으로서 익숙하게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고, 얻은 바를 기록하고, 살펴서 반성하는 4단계를 제시하였으며, 경전의 주석은 누구나 의심난 점과 깨달은 점을 기록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논어』와 『맹자』의 경전본문을 해체하여 주제별로 분류·편집했던 것은 새로운 업적이다.
또한 박장현은 사학(史學)을 국민의 밝은 거울이자 사상이 진보하는 원천이라 파악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만 알고 민중과 시대의 이상을 모르며 정부만 있고 백성이 없는 역사를 서술한 것은 사학의 정신이 결여된 데서 파생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박장현은 『해동춘추(海東春秋)』와 『반도서경(半島書經)』을 편찬하여 춘추필법과 서경 체제에 따라 경학과 사학을 일치시켜 단군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의 민족사를 경전으로 끌어올렸다.
박장현은 유교의 재건립을 위해 안순환(安淳煥)이 세운 조선유교회(朝鮮儒敎會)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중국 공교회(孔敎會)의 진환장(陳煥章) 등과 연락하였으며, 유교가 희망·열성·지혜·담력을 지니고 자존(自尊)의식을 고취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박장현은 세계의 지리와 정세(政勢)에도 관심을 보였다. 특히 탈레스·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데카르트·칸트를 거쳐 마르크스·레닌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철학 사상을 유교 이념과 연관시켜 해석하거나 비판적으로 규정하며 동서철학 비교연구를 수행하고, 서구 문화를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유교 문화의 보편적 세계성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