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0.2㎝.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1959년에 부여군 규암면 신리 중뜸마을 뒷산에서 금동불좌상과 함께 발견되었다. 전면에 도금이 남아 있지 않으나 세부 표현이 정교한 전형적인 백제불로서, 광배와 함께 주조되었다.
머리 위에는 세 송이 꽃모양의 삼면관(三面冠)을 썼고 양쪽 귀에 장식적인 머리칼이 길게 늘어져 있다. 넓적한 얼굴에 비해 이목구비는 작은 편으로, 두 뺨이 팽창되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서려 있다. 목에는 짧은 목걸이를 음각하였으며, 법의는 두터워 몸의 굴곡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옷자락은 여러 단의 고기 지느러미처럼 좌우대칭으로 연속되어 대좌 근처까지 늘어져 있고 천의자락은 몸 앞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었다. 오른손은 여원인(與願印), 왼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맺어 일반적인 통인(通印)과는 다른 형식인데, 모두 끝의 두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다.
간략하게 표현한 발 밑에 단판(單瓣)의 연꽃대좌를 마련하였으며, 머리 위의 보주형(寶珠形)의 광배는 두 줄 음각선으로 원을 돌리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간단한 화염문을 표현하였다.
이 보살상은 부여 군수리에서 출토된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과 거의 비슷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군수리상에 비하여 하체의 표현이 평면적이고 부조적(浮彫的)인 성격이 강하다. 양식적으로는 중국의 북위(北魏) 및 동위(東魏)시대의 불상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