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여래 좌상 ( )

목차
관련 정보
부여 규암면 출토 금동여래좌상
부여 규암면 출토 금동여래좌상
조각
유물
백제시대의 불상.
이칭
이칭
부여규암면출토금동여래좌상
목차
정의
백제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5.5㎝.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1959년 부여군 규암면 신리 중뜸마을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전면의 금도금이 모두 떨어지고 녹이 많이 슬어 세부 특징은 분명하지 않으나, 백제 초기의 불좌상 형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이다.

둥근 얼굴은 몸에 비해 크게 조성되었는데 이목구비가 불분명하나 눈을 바로 뜨고 반듯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뺨은 팽창되어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있는 듯하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그 위에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몸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두 손을 배 앞에서 마주 잡아 선정인(禪定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개숙인 선정인의 불좌상은 5세기 전반의 중국불상으로 추정되는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과 형식상 매우 유사하다. 상체의 법의(法衣)는 얇아져 두 팔의 윤곽이 뚜렷하다.

어깨에서 팔에 걸쳐 연속된 굵은 골주름이 층단을 이루고 있고, 가슴 앞에는 U자형의 옷깃이 새겨져 있다. 상체에 비해 하체는 훨씬 두터워 안정감있는 모습인데, 양무릎 사이가 움푹 패어 무릎을 꿇고 앉은 것처럼 보인다. 무릎 위에는 굵은 융기선 옷주름을 세 단으로 층이 지게 표현하였다.

대좌는 속이 빈 단순한 사각형의 수미단(須彌壇)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하단에 달린 사각형 굽으로 중대석(中臺石)을 삼은 듯하다. 뒷면은 조각이 없는 단순한 형태이며 중간에 광배를 끼웠던 촉이 달려 있다. 조성시기는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삼국시대불교조각(三國時代佛敎彫刻)』(국립중앙박물관, 1990)
『한국(韓國)의 불상(佛像)』(진홍섭, 일지사, 1976)
「부여규암면출토백제불보살상(扶餘窺巖面出土百濟佛菩薩像)」(황수영, 『미술자료』8, 국립중앙박물관, 1963)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곽동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