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진사, 전적, 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 · 서예가.
이칭
문숙(文叔)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6년(인조 14)
사망 연도
1700년(숙종 26)
본관
봉화(奉化)
주요 관직
사예
정의
조선 후기에, 진사, 전적, 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 · 서예가.
개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숙(文叔). 증조부는 글씨로 유명하여 이황(李滉)의 묘비를 쓴 금보(琴輔)이며, 아버지는 금시율(琴是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7년(숙종 3) 진사가 되었고, 다음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사예 등을 역임하였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고향에 돌아와 증조부의 붓글씨에 매료되어 서예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금성규의 특출한 필법은 널리 알려져 글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막역하게 사귀던 당대의 이름난 사람으로는 이동표(李東標)·권두인(權斗寅)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눌은집(訥隱集)』
집필자
유영박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