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숙(文叔). 증조부는 글씨로 유명하여 이황(李滉)의 묘비를 쓴 금보(琴輔)이며, 아버지는 금시율(琴是律)이다.
1677년(숙종 3) 진사가 되었고, 다음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사예 등을 역임하였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고향에 돌아와 증조부의 붓글씨에 매료되어 서예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금성규의 특출한 필법은 널리 알려져 글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막역하게 사귀던 당대의 이름난 사람으로는 이동표(李東標)·권두인(權斗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