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여인(汝寅). 기대복(奇大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의(奇薿)이고, 아버지는 도사 기성헌(奇誠獻)이다.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04년 검열이 된 뒤 설서·홍문관정자·홍문관박사·부수찬·전적·병조좌랑·수찬·부교리·장성현감을 거쳐 1609년(광해군 1)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을 역임하였다.
1612년 교리를 거쳐 이듬해 강화부사가 되었는데, 이때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강화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영창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를 후대하였다 하여 파직, 하옥되었다. 1617년에 풀려나 1620년에 다시 기용되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고, 1626년(인조 4)에 선천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 의주가 함락되고 적이 곽산의 능한산성(陵漢山城)에 이르자 수성장(守城將)으로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다시 선천에 돌아와 적과 항전하였다. 이때 적은 '항복하라'는 글을 보내왔으나 이를 불태우고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인조가 치제(致祭)하고 정려(旌閭)하여 포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