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집 ()

기암집
기암집
불교
문헌
조선 중기, 승려 기암 법견이 쓴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48년에 간행한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1648년(인조 26)
간행 시기
1648년
저자
기암 법견(奇巖法堅)
편자
경운(慶雲)
권책수
3권 1책
권수제
기암집(奇巖集)
판본
목판본
표제
기암집
소장처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
내용 요약

『기암집(奇巖集)』은 조선 중기의 승려 기암 법견(奇巖法堅)이 쓴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48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법견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이자 사명 유정(四溟惟政)의 사제로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동하며 입암산성을 쌓아 나라를 지킨 의승이다. 법견은 금강산 지역의 사찰들을 재건하는 불사를 많이 주도했는데, 이와 관련된 기문이 이 책에 다수 수록되어 있다.

정의
조선 중기, 승려 기암 법견이 쓴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48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기암 법견(1552~1634)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1520~1604)의 제자이다. 그는 전라북도 부안 출신으로 호남에서 뇌묵 처영(雷默處英)에게 출가했다. 지리산에서 휴정의 법을 이었으며, 사형인 사명 유정(1544~1610)에게도 배웠다.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동하며 전라남도 장성 입암산성을 쌓고, 그 성의 수호를 담당하는 총섭으로 활동하였다. 지리산, 구월산, 묘향산, 금강산 4대 산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만년에는 금강산에 많은 절을 세웠다.

서지사항

『기암집(奇巖集)』은 목판본이고, 3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첫머리에는 1647년(인조 25) 이민구(李敏求)가 쓴 서문이 있고, 책의 마지막에 1648년 경기도 삭녕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했다는 간기가 적혀 있다.

구성과 내용

이민구가 쓴 서문에는 '불교는 주13을 중시하고 비평과 주14은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시문을 통해 주15가 드러나기 때문에 시에 뛰어난 승려가 끊이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제자 경운(慶雲)이 법견의 시문을 가지고 와 품평을 청한 사실이 적혀 있다. 또한 법견의 시가 '깊이 있고, 품격 높으며, 의리(義理)가 있으며, 문장이 주18 식견이 넓다'고 평가했다.

『기암집』 권1에는 5언 주7와 7언 주8, 율시(律詩) 등 시 105편 119수가 실려있다. 이 시 중에는 승려뿐 아니라 이식(李植), 이명한(李明漢) 등 이름난 유학자나 관료들과 교환한 시가 적지 않다. 법견이 쓴 「염불관(念佛觀)」은 여러 사찰 전각의 주19에 새겨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시이다. 권2에는 상량문 1편과 주9 18편, 총 19편이 실려 있는데, 이 글 중에서 「금강산 유점사 법당 상량문」, 「서산(西山)대화상 기신재소(忌晨齋疏)」, 「송운(松雲)대사 백재소(百齋疏)」 등이 주목받는 작품이다. 권3에는 주10, 주11, 발문, 중창기(重創記) 등 모두 2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법견의 글 중 「임진년 강화부 주총통급탄자(鑄銃筒及彈子) 권선문」은 임진왜란 때 강화도에서 총통과 탄환을 제작한 사실, 강화 해변 주17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밖에도 「장안사 법당 권선문」, 「유점사 천왕문 권선문」, 「표훈사 해회당 권선문」 등 주로 금강산 일대 사찰들의 주20과 관련된 글이 많다. 이 절들 중에는 왕실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불사도 확인된다.

또 「금강산 백화사(白華寺) 입비발기(立碑跋記)」에서는 휴정의 제자 언기(彦機)와 쌍흘(雙仡)이 문장으로 이름난 이정구(李廷龜)의 글과 선조의 부마 신익성(申翊聖)의 글씨를 받아 스승의 비를 세운 내력을 적었다. 이 비문을 통해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가 중국에서 들여온 임제종의 법맥을 휴정이 이어받았다는 법통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법견은 그러한 내용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백화암에 스승 휴정의 비가 세워졌음을 강조했다.

의의 및 평가

『기암집(奇巖集)』은 임진왜란과 그 이후의 불교 신앙, 수륙재(水陸齋) 등 의례의 실행 양상, 중창불사(重創佛事)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는 역사 기록물로 가치를 가진다.

참고문헌

원전

『기암집(奇巖集)』
『조선왕조실록』

단행본

이상현 옮김, 『기암집』(『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5, 동국대 출판부, 2015)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논문

이대형, 「17세기 승려 기암 법견의 산문 연구」(『열상고전연구』 31, 2010)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 처음 축성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관련 기록이 있어서 고려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았다. 현재 남문과 북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사적으로, 사적 정식 명칭은 ‘장성 입암산성’이다. 우리말샘

주2

승군(僧軍)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 하던 승직(僧職). 우리말샘

주7

한 구가 다섯 글자로 된 절구.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다. 우리말샘

주8

한시(漢詩)에서, 한 구가 칠언으로 된 절구. 모두 4구로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주9

부처나 명부(冥府) 앞에 죽은 이의 죄복(罪福)을 아뢰는 글. 우리말샘

주10

신자들에게 보시를 청하는 글. 우리말샘

주11

승려가 시주에게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게 하여 좋은 인연을 맺게 하는 글. 우리말샘

주12

임금의 사위. 우리말샘

주13

사라져 없어짐. 곧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샘

주14

문장의 운율(韻律). 유협의 ≪문심조룡≫에서 창작론(創作論)에 해당하는 제33장의 제목이다. 유협은 이러한 운율의 발생은 생리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보았으며, 음악뿐 아니라 문학의 문장에도 음률(音律)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말샘

주15

교법(敎法)을 받을 수 있는 중생의 능력. 우리말샘

주17

포를 설치하여 쏠 수 있도록 견고하게 만든 시설물. 우리말샘

주18

온순하고 인정이 두텁다. 우리말샘

주19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 주로 한시(漢詩)의 연구(聯句)를 쓴다. 우리말샘

주20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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