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안주 출신. 1919년 3월 3일 안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헌병대와 충돌해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곧바로 만주로 망명해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7월에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가 합류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조직되자 결사대원이 되었다.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이 내한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에 있는 일본의 주요기관을 폭파함으로써 미국 의원단에게 한국민족이 자주독립을 위하여 항쟁하고 있다는 실정을 인식시켜 세계만방에 여론을 환기하고자 계획한 광복군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의 지령을 받고, 김영철(金榮哲)을 결사대장으로 한 대원으로 선출되어 김최명(金最明)과 함께 무기를 소지하고 서울에 들어왔다.
세 사람은 서울에 들어와 조선총독부와 남대문역·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하려고 계획하고, 그 해 8월 21일 중국요리집 아서원(雅敍園)에서 거사에 대한 모의를 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이후 3년을 감형 받아 1927년 9월 21일 만 7년의 복역을 마치고 만기 출옥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