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신. 1917년부터 독립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1918년 1월 대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8년을 부역하였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다시 입국, 대구 지방에서 윤창선(尹昌善) 등과 같이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1929년 4월 일본경찰에 다시 잡혔다.
192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언도받고 10년간 복역중 신병으로 가석방되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