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평산(平山) 출신. 1919년 8월 초순 평산군 문무면 화랑리 민승현(閔昇顯) 집에서 민승현과 김치화(金致華)의 권고로 조창선(趙昌善)과 같이 주비단(籌備團)에 가맹하였다.
그 뒤 1921년 4월(음력)에 평산군 세곡면 수동리에서 유상렬(柳相烈)·조창선 외 수 명이 회합을 갖고 군자금을 모금하기로 하고, 경고문을 인쇄하여 각처의 부호에게 공채증권 또는 군자금통지서를 배부하였다. 그 해 5월에는 평산군 고지면 조천효(趙天効)를 비롯하여 여러 부호에게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그 해 10월 4일에는 세곡면의 부호 양재성(梁在星)이 군자금을 거절하자 총상을 입히면서 군자금의 제공을 강청하였다. 한편, 1921년 3월 11일(음력)에는 일본군의 밀정 이칠성(李七星)과 이범락(李範洛)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4일 평산군 세곡면 수동리 이만석(李萬石)의 집에 은신 중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교전 중 총상을 입고 붙잡혔다. 그 뒤 사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