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산우(汕愚).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14년에 선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천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결사대원이 되었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美國議員團)이 내한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에 있는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고급관리를 살해하여, 미국의원단에게 한국민족이 자주독립을 위하여 항쟁하고 있다는 실정을 인식시켜, 세계만방의 여론을 환기하고자 계획한 광복군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의 명령을 받고 김영철(金榮哲)을 결사대장으로 한 대원으로 선출되어 김성택(金聖澤)과 함께 무기를 소지하고 국내에 잠입하였다.
서울에 들어와 조선총독부와 남대문역·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하려고 계획하고, 같은 해 8월 21일 아서원(雅敍園)에서 거사에 대한 모의를 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이후 3년을 감형 받아 1927년 9월 21일 7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만기 출옥하였다.
1963년 독립장이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