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권 ()

법제·행정
인물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 조선임전보국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이칭
기쿠야마 지켄[菊山時權]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4년(고종 21) 5월 11일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황해도 재령
정의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 조선임전보국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창씨명은 기쿠야마 지켄. 일제하 하급 말단 행정직에서 시작하여 도지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8년 관립 평양사범학교의 전신인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고, 해주 사립 벽성의숙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1909년 관계로 진출할 의지를 가지고 원산 재무서 주사로 들어갔다. 이어 함경북도 회령으로 전보되어 군서기로 근무한 후, 1914년 3월 함경북도 경원군수에 발탁되었다. 1917년 회령군수, 1918년 온성군수를 지냈다. 1919년 온성군수로 재직하면서 만세운동을 진압하여 일제의 인정을 받았다.

1922년 함경북도 도이사관 상공과장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사회과장, 지방과장, 산업과장을 두루 거쳤다.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양도의 지방과장을 지냈다. 함남과 함북은 국경에 인접하고 항일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지역이라 관리들이 대개 기피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위험한’ 지역에서 행정을 민활하게 처리한 공을 인정받아 1928년 함경남도 도사무관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1932년에 경상북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으로 산업부장에 올랐다. 1934년 8월 6개월간 구미시찰 혜택을 받았다. 1936년 5월 전라북도지사로 승진하여 1년간 재직하였고, 1937년 4월부터 1939년 5월까지 강원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의 주요 외곽단체 간부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선전,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1938년 7월 강원도지사 재직시 국민정신총동원 강원도 연맹의 총재로 추대되었고, 1939년 4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참여로 선임되었다. 도지사에서 퇴임한 후 1940년 10월부터 1943년 1월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로 활동하였다. 1943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으로 선임되어 1945년 7월 이 단체가 해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8월 전쟁협력단체인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 경기도준비위원과 임전대책협력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9월 임전대책협력회 위원으로서 가두 채권판매 활동에 참여하였다.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로 선임되었고, 1942년 1월 이사장에 선임되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1941년 11월 7일 경신중학에서 ‘지원보급 및 혈전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1942년 10월 2일 「광영의 징병제실시를 앞두고」라는 제목으로 징병제 환영의 글을 『매일신보』에 기고하였다. 1943년 11월 경성익찬회 위원으로 학도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고, 1944년 11월 경상북도 지역에 파견되어 강연회와 좌담회를 통하여 학병, 지원병, 징병 또는 징용을 선전하였다.

1925년 훈6등 서보장, 1939년 훈3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0년 4월 훈3등 욱일중수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집필자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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