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나서, 10세에 아버지가 죽자 이를 매우 애통히 여겨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가정이 극히 빈곤하여 성장해서는 동생과 함께 품팔이까지 하면서 어머니를 공양하였다.
효성에 감복한 전의현령이 환곡 대여를 실시할 때마다 왔는지 물었으며, 김충렬에게 『소학(小學)』을 가르쳐주었다. 성장하여서 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한 결과 그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문이 세워졌고, 1666년(현종 7) 예물이 하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