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이습(而習). 호는 화서(華棲). 아버지는 목사 김이석(金履錫)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홍주영(洪疇泳)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805년(순조 5) 증광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전시(殿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1808년 성균관전적·병조좌랑을 거쳐, 1809년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영남어사·순천부사 등을 역임하고, 1825년 공청도관찰사(公淸道觀察使), 1827년 도승지, 1832년 공조판서, 1833년 형조판서, 1835년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40여 년 동안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왕의 자문과 정사에 깊이 관여하였고, 청렴과 근면으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화서집(華棲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