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암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수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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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김수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72년(고종 9)경에 김수증의 현손 김유영(金裕榮)과 홍낙유(洪洛猷) 등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두에 심의붕(沈宜朋)·김이찬(金履瓚)의 서문과 권말에 김시제(金諟濟)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불분권 1책. 목활자본.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문집과 유사록(遺事錄)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집에는 책 2편, 서(序) 2편, 기 2편, 첩(帖) 1편, 제문 2편, 묘갈문 1편, 시 21수, 만사 11수, 보초(報草) 5편이 실려 있고, 유사록에는 세계·연보·행장·묘지·통문·소지(所志)·축문 등이 실려 있다.

보초와 첩은 영산현감으로 있으면서 작성한 공문서의 내용을 문집에 옮겨 실은 것이다. 그 가운데 「진주지소두소착사보초(晉州紙所頭疏鑿事報草)」는 진주 남강지역 일대의 지형을 조사하고 범람방지를 위한 제방축성과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행할 굴착작업의 실시를 위한 자료이다. 공사 시행에 따른 득실을 분석하여 보고한 것이다.

책(策)은 당시 정치 도의의 타락을 지적해 윗자리에 있는 고관이 사심을 버리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그리고 만약 임금이 만기(萬機)를 살펴서 사람을 알고 사람 쓰는 방법을 연구해 어진 사람을 얻어 정치를 맡긴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밖에 「유림통문(儒林通文)」 및 「본읍사림정읍문(本邑士林呈邑文)」·「청북유생정영문(淸北儒生呈營文)」은 유생들이 김수증의 효행과 덕업을 기려 김수증을 배향한 사당을 승격시켜줄 것을 청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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