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여용(汝容), 호는 죽초(竹樵). 아버지는 배덕위(裵德緯)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 홍희범(洪羲範)의 딸이다. 8세에 소학을 배우고 능히 시를 지었으며, 13세에 『시경(詩經)』·『서경(書經)』을 외웠다.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으나 매번 과거에 낙방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1865년(고종 2) 각 군에서 문행(文行)과 덕망(德望)이 있는 자를 추천하여 수임(首任)으로 삼게 하였는데, 이 때 거듭 천거되어 연임하였다.
제자로는 홍승조(洪承祚), 박칠홍(朴七烘) 등이 있으며, 문학이 탁월하였다 하여 1905년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죽초일고(竹樵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