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철천리 마애 칠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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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
조각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6구의 마애불.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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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6구의 마애불. 보물.
개설

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은 높이 95㎝의 원추형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군이다. 마애불이 조각된 바위의 정상부는 방형으로 평평하게 마무리 되었고 바위의 아랫부분은 서쪽만이 90°에 가까운 각을 이루고 나머지 방향은 원형에 가깝다.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정원(正圓)을 같은 면적으로 1/4로 분할하였을 때 나누어진 조각의 평면과 비슷한 모양이다.

내용

북서쪽과 북쪽 면에는 불좌상이 각 1구씩 조각되어 있으며 동쪽과 동남쪽 면에는 입상이 4구 새겨져 있다. 서남쪽 면은 현재 불상이 새겨져 있지 않고 훼손된 흔적만이 남아 있다. 여기에 원래 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광부들이 떼어갔다는 구전이 전한다. 불상의 훼손상태를 살펴보면 구전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2구의 불좌상의 다리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정 자국이 거칠고 깊게 파여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때 부조 형태의 불상을 떼어간 흔적으로 볼 수 없고 후대에 인위적으로 불상을 훼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남쪽의 불상 밑 부분에는 다른 면의 불상과는 다르게 연판에 화문이 장식된 앙련(仰蓮) 대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서남쪽 훼손된 부분에는 이불병존좌상(二佛竝存坐像)이 조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서쪽과 북쪽에 조각된 좌상 2구는 모두 높은 육계와 비교적 긴 상호를 갖고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착용하였다. 옷 주름은 형식적인 선각으로 표현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한 편이다. 북서쪽의 좌상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수인을 취하고 있고 북쪽의 좌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동쪽과 동남쪽 면에 새겨진 4구의 입상은 모두 좌상과 같이 비교적 둥글고 긴 상호와 높은 육계를 갖고 있다. 입상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게 선각으로 처리하였다. 4구의 입상 중 가운데 2구의 입상 신체에는 바위를 절단하기 위해 후대에 훼손한 것으로 보이는 3개의 쐐기 구멍이 남아있다.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은 크게 세면의 불상 군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서남쪽 훼손된 바위면의 이불병존좌상과 북서쪽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좌상이 각을 이루며 만나면서 2개의 면을 만든다. 나머지 한 면은 북쪽면 항마촉지인을 취한 불좌상 1구와 같은 원호(圓弧)의 면에 위치해 있는 동쪽과 동남쪽의 불입상 4구가 한 면을 만든다.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은 4면석에 다수의 불상이 새겨져 있는 사방불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불병좌상이 새겨져 있고 전체적으로 3면으로 분할되어 있는 바위의 형태로 보았을 때 방위불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은 연화대좌를 갖춘 이불병존좌상을 통해 보았을 때 도상적(圖像的)으로는 『법화경(法華經)』 「견보탑품(見寶塔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훼손되어 구체적인 도상적 특징을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나주 철천리 마애칠불상의 조성연대는 대략 고려 전기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석불·마애불』(최성은, 예경, 2004)
『국보』4 석불(황수영 편, 예경산업사, 1985)
『문화재대관』보물 중(문화재관리국,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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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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