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종이 바탕에 수묵(水墨). 세로 39.3㎝, 가로 283.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번호 德壽宮 3061). 강세황은 18세기 조선화단에 있어 활동이 두드러진 문인화가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지칭된다. 그는 김홍도(金弘道)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림에 있어 산수, 인물, 화조, 사군자 등 모든 분야를 그렸으며 풍속화와 실경 산수뿐만 아니라 여러 점의 자화상(自畵像)까지 남기고 있다. 아울러 화원이나 문인화가 가리지 않고 그림에 많은 화평(畵評)을 남겨 명실공히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예원(藝苑)의 총수’로 지칭된다.
괴석에 난초와 대나무를 그린 「난죽도」는 족자의 「삼청도(三淸圖)」(1785년, 개인 소장)와 같은 소재로, 채색의 사용 없이 수묵만으로 그린 것과 횡권(橫卷)으로 된 점이 차이이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미공개회화특별전(1977. 4. 20∼5. 29)’을 통해 일반 공개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있어 묵죽은 이정(李霆)에 의해 정형화되었다. 묵란 또한 고려시대에도 그려졌음이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이징(李澄)·이정 등 조선 중기 그림들이 현존되나 매화나 대나무보다 시대가 뒤져 대부분이 18세기 이후 것들이다.
이 그림은 난초보다 대나무가 점하는 비중이 크며 두루마리 말미에 크고 작은 글씨로 두 제(題)를 이어서 썼다. 간기(刊紀)에 78세인 1790년 2월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난초의 경우 잎이 길고 넘실대며 꽃과는 농도를 달리 했으며 꽃의 방향이 모두 다르다.
대나무는 화면의 2/3를 점하는데, 가는 줄기와 잎은 굵은 줄기와 달리 담묵(淡墨 : 진하지 않은 먹물)으로 톤을 달리했으되 뻗은 가지가 좌우로 펼쳐져 난초처럼 완만한 각도를 이루고 있다. 발문에 언급된 중국 원(元)나라 조맹부(趙孟頫, 1254∼1322년)와 친연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 그림은 강세황의 높은 경지를 대변하는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