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계도 ()

목차
회화
작품
유숙(劉淑)이 그린 조선 후기의 기록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유숙(劉淑)이 그린 조선 후기의 기록화.
내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계도는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21∼379년)가 동진(東晋) 353년 3월 3일 절강성 소흥현 남서에 위치한 회계산 아래 곡수(曲水) 난정(蘭亭)에서 42명의 명사와 더불어 베푼 시회(詩會)인 난정수계(蘭亭修稧)에 연원을 둔 그림이다.

이를 주제로 한 그림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중국화의 경우도 송(宋) 이전은 드물고, 명(明)에 이르러 당인(唐寅, 1470∼1523년), 구영(仇英, 1509∼1559년), 전곡(錢穀, 1508∼1578년), 성무엽(盛茂燁, 17세기) 등이 그린 것과 미국 클리브랜드미술관 소장으로 청(淸)의 번기(樊沂, 17세기)가 1671년 그린 「난정수계도권」 등이 현존한다.

국내에 알려진 중국 것으론 당인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한 점이 동원선생(東垣先生) 콜렉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것이 있다(유물번호:동원 2630, 견본 채색, 24.0×196.4cm).

우리나라에서는 동산방화랑 및 국립중앙박물관에 각기 필자 미상과 조태억(趙泰億)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곡수도(曲水圖)」란 명칭의 10곡과 8곡 병풍이 소장되어 있다(유물번호, 4606). 이를 통해 보면 대체로 18세기 이후 것들이 유존되고 있는데 중국의 두루마리[卷]와 달리 병풍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장식 병풍으로, 화원에 의해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이 「수계도」는 미국에 유출되었다가 1995년 여름 국내로 귀국하여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최 시, 이를 기념키 위해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한국근대회화명품(韓國近代繪畵名品)’ 특별전에 출품하여, 일반 공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림 앞에 붙은 묵서는 바로 그림의 제목이자 모임의 성격을 알려 주는 것이다. 현 상태는 여타의 예서(隷書)와 지두화에 능한 김석준(金奭準)가 예서로 쓴 대자(大字)의 ‘修稧圖(수계도)’의 첫머리 ‘修’자가 잘려 나갔다. 아마도 이 제목은 1857년 이후에 쓴 것이 분명하다.

참가자 30인 전원의 30수(首) 시문(詩文)에 이어 1857년 봄에 이상적(李尙迪)이 이 두루마리를 본 기록과,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진 김석준의 글에 의하며, 원래 추사(秋史)가 추제(追題)를 써 준다고 했으나 한 해 전에 돌아가시자(1856년) 지난날 써 준 ‘서화동심처(書畵同心處)’와 전기(田琦)의 ‘청인굴(淸人詘)’로써 축머리를 장식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 두루마리 우측 시작 부분에 김정희와 전기의 축두(軸頭)도 없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1863년 계해(癸亥)와 1873년 계유(癸酉)의 배관기로써 두루마리가 끝난다.

참고문헌

「혜산 유숙의 수계도권연구」(유옥경, 『미술자료』59, 1997)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