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강중(剛仲), 호는 삼졸재(三拙齋). 할아버지는 남지(南芷), 아버지는 남율(南嵂)이며, 어머니는 한옹(韓顒)의 딸이다.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합격, 1630년(인조 8)에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전경시강(專經試講)에 우등하여 좋은 말 한필을 상으로 받았다.
인조·효종 때에는 대사헌·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당시의 붕당정치를 비판하면서 붕당설(朋黨說)을 상소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동·서 양당이 여러 파로 갈라져 인물추천에 편당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편당이 되어 바른 말을 하는 자를 배척하여 비루한 자가 등용되어 대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물을 등용하는 데 있어서는 마음이 공정하고 식견이 밝고 도량이 있는 자를 삼공(三公)의 자리에 앉힐 것과 재질과 기량이 적당한 자들을 뽑아 6조·3사의 장으로 삼아 책임 있는 인재등용을 하도록 함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붕당론은 당시 당쟁으로 빚어지는 상황을 잘 지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삼졸와유고(三拙窩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