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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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출신유생 김원명이 1895년 4월부터 1896년 1월까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과정을 기록한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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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공주 출신유생 김원명이 1895년 4월부터 1896년 1월까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과정을 기록한 견문록.
개설

김원명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공주 출신의 유생이다. 김원명은 이 책에서 1895년 4월공주를 출발해 서울, 인천을 지나 황해도 신천의 안태훈(安泰勳)집에서 김구(金九)를 만나 의기투합되어 그 후 함께 중국에 갔다가 1896년 1월 초 돌아올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내용

김원명은 1895년 4월 가족과 이별하고 고향인 공주를 떠났다. 서울에 들어가 조선이 왜화(倭化)되어 감을 탄식하였다. 인천에 가서 신정희(申正熙)를 만나 덕치(德治)와 현인(賢人) 기용을 건의하고 바닷길로 신천 청계동의 안태훈 집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김구를 만나 척양척왜의 방책을 의론하고 그 해 5월 중국을 향해 떠났다. 이들은 황주에서 일본인 300여명이 잡거함을 보고, 평양의 마두령(馬頭嶺)에서는 청일 양군이 전투했던 현장을 둘러보았다.

영흥과 정평을 지나 함관령을 지날 때는 길 옆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승전비각을 보고, 마운령을 넘어 6월 19일 갑산과 혜산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갔다. 모아산과 노인령을 지나고 파저강을 건너 통화현에 도착해 서문밖에 있는 조선 객점에서 한인 10여명을 만나 며칠 묶고 심양을 향했다.

심양에서는 청군 진영을 찾아가 청군의 협박을 물리치고 대장을 만나 왜적과 접전해 패한 바 되어 이곳에 망명해 왔음을 밝히고 청군 마대인의 후대를 받았다. 다시 통화현을 지나 노인령을 넘고 압록강을 넘어 운산·안주·숙천·순안을 거쳐 청천강 유역에서 일본인에 의한 전봇대 공사가 한참임을 보았다.

7월에 평양에 도착해 일본군이 청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대연회를 베풀고 모란봉에 일장기를 걸어 놓고 있음에 울분을 터트리고 대동강을 건너 1895년 7월 말일 청계동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유중교의 문인인 고석규(高錫奎)를 만나 위정척사론에 관한 강론을 들었다. 9월 12일 다시 안악을 거쳐 21일에 중국 심양에 가서 관동연왕(關東燕王) 이극강(李克康)을 만나 조선의 실정과 박영효·서광범 등 개화파 관료를 비난하는 서신을 전한 후 연왕의 후대를 받았다.

연왕은 이들에게 진동영(鎭東營)에서 삼도도통령 겸 흥부도태(興部道泰)였던 서경장(徐敬章)을 소개하였다. 서경덕은 자기의 군대가 조선에 갈 것이라고 하면서 신표를 주었다.

이들은 이 해 연말을 이곳에서 보내고 이듬해인 1896년 1월 4일 출발해 통화·고황성을 거쳐 다시 신천의 청계동으로 돌아왔다. 말미에 박덕로(朴德路)와 유중교(柳重敎)의 제문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의병편(박성수·손승철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집필자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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