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권 13책. 목판본. 동생 정주(靖周)가 7년 동안 남은 저술을 수집하여 1795년(정조 19)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민보(李敏輔)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종질 육(焴)의 발문이 있다.
권1∼11에 서(書) 340편, 권12∼20에 잡저 26편, 서(序) 4편, 기 4편, 권21에 제발(題跋) 15편, 논 4편, 설 10편, 권22에 명 7편, 잠 3편, 찬(讚) 1편, 축문 5편, 제문 10편, 권23·24에 제문 14편, 애사 1편, 묘지명 18편, 표(表) 1편, 갈(碣) 1편, 권25에 행장 3편, 유사 2편, 공이(公移) 17편, 권26에 시 85수가 실려 있다.
서(書)는 저자의 스승인 이재(李縡)를 비롯하여 윤봉구(尹鳳九)·김원행(金元行)·송명흠(宋明欽)·이민보 등 당시의 석학들과 주로 경전 또는 심성(心性)·이기(理氣)에 관해 주고받은 문답이 대부분이다.
잡저는 경의(經義)를 밝힌 것으로, 권12에 ≪심경≫·≪소학≫, 권13에 ≪논어≫·≪중용≫, 권14에 ≪의례≫·≪주역≫, 권15에 ≪상서≫, 권16에 ≪대학≫ 순으로 경문(經文)·주해(注解)에 관계없이 전편에 걸쳐 의심되거나 난해한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해설을 붙였는데, 거기에는 역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학설이 인용되고 있다.
그 밖에 1750년(영조 26)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로서 이듬해의 춘방강의(春坊講義) 내용을 적은 <서연강의 書筵講義>를 비롯해 송익흠(宋益欽) 등과 ≪대학≫ 1편을 전체적으로 다룬 <옥류강록 玉溜講錄>, 심성이기에 관한 저술인 <녹려잡지 鹿廬雜識> 등도 경전·성리의 학설이다.
심지어 80여 수의 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김원행과 차운한 <신기음 神氣吟>·<심성잡영 心性雜詠> 36수 등이 대표적이다.
숙종연간의 후반기에 학계가 심성론을 둘러싸고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성범심동설(聖凡心同說)을 주장한 낙론(洛論)과 그 반대 입장을 취한 호론(湖論)으로 나뉘어 이른바 호락논쟁이 있을 때, 저자는 스승 이재의 영향을 받아 처음 낙론에 속하였다가 호론 쪽으로 기울어져 기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과 논리가 이 책의 <녹려잡지>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우주에 충만하여 모든 조화를 일으키고 허다한 사물을 생성하는 것이 하나의 기일 뿐, 이(理)는 끼어들 틈이 없다고 하면서, 다만 그 기운이 그렇게 충만할 수 있고, 작용할 수 있는 원인은 자연일 수밖에 없는데, 자연 그것을 성인이 명명하여 도(道) 혹은 이(理)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맹자(孟子)가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거론한 것을 들어 성선 자체가 바로 기질이 선하다는 것이요, 기질 이외에 별도로 또 다른 선한 성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 이이(李珥)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이통기국(理通氣局)을 들어 이이를 주희(朱熹) 이후 초유의 선각자로 주장하였으나, 이이의 논설에서 기와 이 두 가지로 보는 투명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애석하게 여기고, 그 당시에 자기와 같은 논리를 전개하는 자가 있었더라면 그는 확실히 깨쳤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였다.
이러한 주기론 내지 일원적 차원을 강조한 원기론(元氣論)은 그 뒤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확립함으로써, 유리적(唯理的) 입장에서 호락양론을 지양한 기정진(奇正鎭)과 더불어 저자를 조선시대 성리학계의 6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할 수 있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