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학의 원류는 고대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신선술에서 유래하며, 이를 신앙하는 방사(方士)들에 의하여 존경받고 숭상되어 전해왔다. 방사의 ‘방(方)’은 기술을 의미한다. 그들은 불로장생의 약을 탐구하고, 정기(精氣)나 생명의 구조를 연구하는 등 실험과 기술을 연마하고 축적하면서 이를 전개하였다.
이것이 점차 체계화되면서 외단학(外丹學)과 내단학(內丹學)으로 크게 구별된다. 외단학은 벽곡(辟穀: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대추·밤 등을 날로 먹는 일)이나 단약(丹藥), 즉 선약(仙藥)을 연조(煉造)하여 복용함으로써 신단(神丹)을 연마하고 신선을 이루는 타력적·외적 방법이다.
내단학은 자력적·내적 수련에 의한 공행(功行)을 쌓음으로써 천지운행의 법칙에 의하여 몸 안에 음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즉 몸에 단을 형성하여 장생불사(長生不死)하려는 본성의 수련법이다.
위백양(魏伯陽)의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에서는 금단의 공(功), 즉 외단학에 대하여 “호마(胡麻:참깨와 검은깨의 총칭)도 수명을 늘려주거늘 금단을 먹으면 어떻겠는가? 금의 성질은 썩지 않으니 만물의 보배가 된다. 술사(術士)가 이를 복용하면 장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연단의 공(功), 즉 내단에 대하여 “음양이기(陰陽二氣)는 지극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감응이 서로 통하거늘, 하물며 몸 안 가슴 속에서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음양은 해와 달에 해당하고 불과 물로써 그 징험(徵驗:징조를 경험함)을 삼는다. 귀·눈·입 삼보(三寶)는 굳게 지켜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였다.
금단술은 우주 자연의 변화 이치가 바탕이 된다. 금은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물질의 원소를 변환시킨다는 뜻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만물의 변화를 설한 철학이 있어서, 예컨대 ≪역 易≫은 우주와 인생의 변화를 통찰하여 그 변화 가운데 불변의 이치를 구하고 있는데, 자연계의 변화 이치를 터득하면 인간의 손으로 여러 가지 것을 창작해 낼 수 있다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갈홍(葛洪)은 ≪포박자 抱朴子≫에서 “변화의 이치는 어떤 것에서나 다 일어난다.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법이 있다. 인간은 형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감추는 방법이 있다.
방제(方諸:달을 향해서 물을 얻는 동판)나 양수(陽燧:해를 향해서 불을 얻는 동판)를 쓰면 공중에서 물이나 불을 얻을 수 있다. 납의 성질은 희지만 붉게 하여 단(丹)이 되고, 단의 성질은 붉지만 희게 하여 납이 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구름·비·서리·눈은 모두 천지의 기상이지만 약을 써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더구나, 만들어진 것은 자연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하늘을 날고 땅을 달리며,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동물이 조금씩 옛 몸을 바꾸어 전혀 다른 동물이 되는 것이 있다.
그들 자연계의 변화는 천변만화로 셀 수 없이 많다.……높은 산이 바다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이 되기도 한다. 이는 큰 물건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이 이물(異物)로 금은을 만들지 못할 턱이 없다.”고 하여 연금술의 제조에 착수하고 있다.
≪포박자≫ 내편의 단약은 단사(丹砂:還丹)·황금·백은 등 32종이 나타나 있으며, 특히 중요한 앞의 둘을 흔히 금단이라고 부른다. 연금술에 의하여 얻은 금단 대약(大藥)이야말로 불로장생에 필요한 최대 유일의 열쇠이다.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에서는 “단사는 신체 오장의 모든 병을 낫게 한다. 정신을 기르고 혼백을 편안하게 하며 기(氣)를 더하고 눈을 밝게 하며, 정매(精魅) 사악한 귀신을 죽이고, 오래 복용하면 신명(神明)에 통하여 늙지 않으며, 잘 화(化)하여 수은이 된다.”고 하였다.
“수은은 금·은·동·석(錫)의 독을 죽인다. 녹여서 환원하면 다시 단이 된다. 오래 복용하면 신선이 되어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단사와 거기서 나오는 수은은 의약용으로 쓰여 역대의 의약서에도 나타나며, 이러한 금속의 용해법은 합금제조기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도교의 외단학은 의약학 및 금속공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내단학은 조식(調息:호흡법)·도인(導引:선인이 되기 위한 양생법)·방중(房中) 등의 방법을 써서 불로장생의 양생술(養生術)을 전개한다.
외단법의 연단 복용에도 반드시 내단의 조식행기(調息行氣)를 행하기는 하였지만, 조식법은 후래도교수행의 대표격이 되었다. 조식은 태식(胎息)·수일(守一) 등의 호흡법이며, 도인은 안마법, 방중술은 남녀 성합법(性合法)이다.
즉, 조식에 대해서 ≪장자 莊子≫ 내편에서는 “옛 진인(眞人:도교의 깊은 참뜻을 닦은 사람)은 그 식(息:호흡)이 깊고 깊어서 발꿈치로 하지만, 중인(衆人)은 식을 함에 목으로 한다.”고 하여 진인의 양생법을 말하고 있다.
≪포박자≫ 내편에서는 “대체 사람은 기(氣) 안에 있고, 기는 인체 안에 있어서, 천지에서 만물에 이르기까지 기를 통하여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다. 기를 행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나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밖으로는 사악을 물리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매일 쓰면서도 그것에 어둡다.” 하고, 또 “입으로 탁한 기를 토해 내고 코로 맑은 기를 들이마신다.”고 하여 다양한 호흡법을 전개한다.
≪제병원후론 諸病源候論≫에서는 “양생도인법(養生導引法)에 말하기를 바르게 벽에 기대어 호흡을 하지 않고, 기 행하기를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러 멈춘다. 달산(疸疝)·대풍(大風)·편고(偏枯)의 모든 풍비(風痺)를 낫게 한다.”고 하여 호흡법과 도인법을 관련시켰다.
≪포박자≫에서는 “천 가지 약을 복용하고 삼생(三牲:牛·羊·豚)을 길러 먹어도, 방중술을 알지 못하면 무익(無益)이 되고 만다.”고 하여 방중술이 선술(仙術)의 최대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방중술은 후대 중국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관련되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내단학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성행하게 된다. 다만, 도교의 내부에서 본다면 ≪포박자≫ 내편에 이렇게 이른다.
“호흡·도인이나 초목의 약을 복용하면 수명연장은 되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신단(神丹)을 복용하면 사람의 수명을 무궁하게 하여 천지와 더불어 끝나며, 구름에 오르고 용을 타며, 태청(太淸)의 기(氣) 가운데를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하는 내·외단의 단계적 관점이 하나의 신앙성으로 계승되고 있다.
불로장생의 신선사상이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하면, 연금술의 기원은 청동기 문명에 있다. 청동기의 기술은 은(殷)나라에서 주(周)나라로 전해져 ≪주례 周禮≫에는 이미 여섯 종류의 합금법이 적혀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제(燕齊)지방에 삼신산(三神山:蓬萊·方丈·瀛洲) 설화가 유행하고, 방사를 중심으로 신산(神山)의 약초가 논의된다. 당시 기원전 5∼4세기경 제나라에서 활약하던 방사의 한 사람인 추연(騶衍)은 음양오행사상을 체계화한다.
변화 원리에 바탕을 둔 음양오행사상은 중국 우주론 구조의 근본이 되며 인체의 생리학이론에도 적용된다. 음양오행은 물질 및 정기의 원질이며 후세의 원소에 상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소의 변환을 목적으로 하는 연금술에서는 근본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후 진(秦)·전한(前漢)의 주된 관심은 ‘신령스런 선약’, 곧 불사의 약초를 찾아 구하는 데 있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하기 위하여 사자(使者)를 삼신산(三神山: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에 파견한 것은 유명한 일이지만, 전한의 무제(武帝)가 불사(不死)하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시황제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무제의 궁중에 방사들이 운집하고, 방사 이소군(李小君)이 황금을 만들어 식사하면 장생하여 봉래산의 신선을 만날 수 있다고 진언하였던 것을 보면, 금단제조쪽이 중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제 당대에 회남왕 유안(劉安)이 많은 방사와 학자를 모아 ≪회남자 淮南子≫를 찬술하였는데, 이 가운데 연금술과 연명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후한(後漢)의 역점은 약초보다는 오히려 ‘인위적인 황금제조’에 있었다. 회남왕의 신선도는 후한 말에 이르러 우길(于吉)의 ≪태평청령서 太平淸領書≫에 전해지고, 그것이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와 삼장(三張:張陵·張衡·張魯)의 천사도(天師道:五斗米道)로 이어져 신앙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연금술은 그들 종교운동과는 별개로 좌자(左慈)―갈현(葛玄)―정은(鄭隱)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갈홍에 이르러 신선사상과 더불어 대성하기에 이른다.
그 후의 금단술은 도교 교단의 발전과 그 교의사상(敎義思想)이 유행함에 따라 전개되어 당대(唐代)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며 점차 사양길로 접어든다. 당대의 많은 황제가 단약에 중독사하였기 때문이다.
제2대의 태종(太宗)이 연년약(延年藥)에, 제11대 헌종(憲宗)이 금단에, 다음의 목종(穆宗)이 단약에 죽고, 이어 경종(敬宗)이 영약을 찾던 중 죽음을 당한다. 회창폐불(會昌廢佛)로 유명한 제15대 무종(武宗)이 단약에, 다음의 선종 역시 장년약(長年藥)에 중독되어 죽는다.
이러한 연금술의 시행착오는 척불(斥佛)·척도(斥道)의 유학자 한유(韓愈)가 통렬히 비판한 대로 커다란 각성을 가져와 오대(五代)를 거쳐 송(宋)나라에 들어오면서 외단에서 내단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이는 수나라·당나라의 불교가 철학적·이론적 전개를 가져온 다음, 전란의 오대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면서 선(禪)의 실천이 현저하게 강조된 것과 궤도를 같이 하며, 이 도교의 내단과 불교의 선이 주자(朱子)의 신유학(新儒學)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송대에는 진종(眞宗) 등 도군(道君) 황제가 많이 나와 도교가 유행하고, 따라서 도교의 학문적 전개도 눈부신 바 있다. 11세기에 장군방(張君房)이 찬술한 축약도장(縮約道藏)인 ≪운급칠첨 雲笈七籤≫에 내단부가 설정되는 등 내단학이 크게 진전을 보인다.
우리 나라 단학의 역사는 관점에 따라 고대의 신선사상이나 신명사상(神明思想), 또는 중국 도교의 유입 등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체계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여러 가지 기록에 나타난다.
이는 고려시대의 도교가 왕실을 위한 기복의식 위주의 이른바 과의도교적 성격(科儀道敎的性格)이었던 데 대하여, 조선시대 도교가 수련도교적 성격(修練道敎的性格)을 띤 것과 관련되며, 고려 말의 주자학 전래와 함께 일어난 척불숭유정책(斥佛崇儒政策) 아래 불교가 오직 선 위주로 흐르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내단학의 계보를 다룬 도가서(道家書)로는 한무외(韓無畏)의 ≪해동전도록 海東傳道錄≫, 조여적(趙如籍)의 ≪청학집 靑鶴集≫,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 海東異蹟≫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단학의 원류가 중국이며, 신라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보는 점이다.
≪해동전도록≫에서는 “생각하건대,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실로 우리 도의 비조(鼻祖)로서 ≪도덕경≫ 오천언을 저술하셨다. 백양진인(伯陽眞人)이 출현함에 이르러 노자(老子)의 진전을 이어 ≪주역참동계≫ 삼편을 저술하니 무릇 우리 도의 대지가 이 두 경전에서 다 갖추어졌다.” 하고 전수계맥을 설정하고 있다.
이들 중 역사적 사실은 김시습(金時習) 이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전진교(全眞敎)―최치원(崔致遠)―김시습으로 이어지는 도맥에는 연단수련적 성격이 강한 ≪주역참동계≫·≪황정경 黃庭經≫·≪태식심인경 太息心印經≫ 등이 전수되고 있어서 조선 단학의 내단적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이에 대하여 ≪청학집≫에서는 도맥이 광성자(廣成子)―환인진인(桓因眞人)―단군(檀君)―호공(瓠公)―최치원―위한조(魏漢朝)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이는 단학의 계맥을 우리 나라 고유의 것으로 보는 바가 특징적이며, ≪해동이적≫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인 ≪해동전도록≫이 주로 호흡법을 중심한 연단수련 중심이라면, 후자인 ≪청학집≫은 삼정환(三精丸)·경옥고(瓊玉膏)·혼원단(混元丹)·길경탕(桔梗湯)·송화주(松花酒) 등 선약 복용을 함께 하는 신선술 성격이 강하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이들과는 다른 시해파(尸解派)를 거론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조선의 단학에는 여러 유파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해동전도록≫에는 <단서구결 丹書口訣>·<단서별지구결 丹書別紙口訣>과 정렴(鄭Ꜿ)의 <용호결 龍虎訣>이 부록되어 있다.
<단서구결>은 유·불·도 3교를 판석(判釋)하여 도교를 가장 위에 둔다. 그리고 도교의 근원, 단의 득력(得力), 단우(丹友)와 사귀는 법을 설명하고 마침내 화후법(火候法)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