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197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5,018㎡. 현재 문루(門樓) · 포대(砲臺)와 성곽 · 돈대(墩臺)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內城) · 외성(外城) · 진보 · 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의 하나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원래 수영(水營)에 속하여 첨사(僉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 강화유수 서필원(徐必遠)의 계청(啓請)으로 첨사를 통진(通津)땅 덕포(德浦)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別將)을 두었으며, 1677년(숙종 3) 유수 허질(許秩)의 계청에 따라 만호(萬戶)로 승격시켰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龍頭) · 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南障) · 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草芝鎭)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門樓址)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